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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마케팅 심리.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하자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마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심리가 있다.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한다. 어떤 일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긴장상태가 계속된다. 


사람은 지려고 태어난 게 아냐.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산티아고 노인은 상어와 싸우기를 결심하면서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주문을 외운다. 자신이 3일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온몸을 다쳐가면서 잡은 청새치를 물어뜯기 위해 상어 무리가 몰려들고 있다. 연로한데다 극도로 지친 상태. 그나마 작살도 없다. 포기할 만도 한데 물러서지 않는다. ‘희망을 버리다니 어리석은 짓이야’라고 그는 생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 대해 “평생을 바쳐 쓴 글이다.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말했던 것만큼 1952년 9월 발표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다.


헤밍웨이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다. 84일째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했다. 40일째까지는 한 소년이 같이 탔지만 지금은 떠났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여느 때보다 일찍 바다로 나갔다. 한낮에 이르러 해안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떠나왔을 때 ‘무지무지한 놈’이 물렸다. 배보다 더 큰 청새치였다. 해가 지고 뜨기를 사흘. 노인은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현기증이 나고 정신이 가물가물해 오지만 노인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런 고기를 못 잡고 죽어버릴 수야 없지. 하느님 그저 견딜 수 있게 해주십시요.”

노인은 왜 그리 청새치에게 집착할까. 노인은 청새치를 낚아 올리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버틴다. 오직 청새치를 잡기 위해 견딘다. 노인은 몇 번이나 중얼댄다. “아무리 힘들어도 난 널 잡고야 말 테다.” 무엇이 노인에게 이런 힘을 줬을까.


사흘 밤낮 동안 청새치와 사투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마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심리가 있다.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한다. 어떤 일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긴장상태가 계속된다. 속된 말로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든다. 틀린 시험문제가 더 잘 기억나고,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 더 기억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시작한 일을 끝내고 싶어 한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마케팅 심리로 이용된다. 연속극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끝난다. 시청자들은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된다. ‘To be continued’다. 퀴즈쇼, 예능오락 프로그램도 이런 형식을 많이 활용한다. 정보를 다 공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한다. 영화 상영 전 예고편도 비슷한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이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주목하는 것은 투자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특히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 조직의 리더나 팀장이다. 실패한 프로젝트나 투자를 잊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겨두다 보면 현명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뭔가 완결시켜야 되겠다는 집착은 때로 불필요한 투자를 결정하게 만든다.


조직의 리더·팀장이라면 불필요한 집착 버려야


마침내 산티아고 노인은 작살을 던져 청새치를 잡는다. 사흘 밤 낮을 포기하지 않고 쫓아다닌 결과다. 노인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다. 노인은 끝내 청새치를 항구까지 가져오지 못한다. 배 옆면에 청새치를 매달고 이동하는 동안 상어떼가 달라붙기 때문이다.


포구에 다다랐을 때 청새치는 거대한 꼬리를 단 뼈만 남는다. 노인은 그럼에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은 대어를 낚은 만족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온 항구에서 사람들이 그 뼈를 보고 상어라고 오해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녹초가 돼 든 잠자리에서 노인은 사자가 나오는 꿈을 꾼다. 무언가 성취한 사람은 결과에 상관없이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했어야 하는데’라는 미련이 없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나가기가 훨씬 수월한 까닭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