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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삼성 vs 엘리엇,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차질

2014년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아르헨티나 디폴트를 야기한 주역이었다. 당시 엘리엇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전용기와 해군 함정에까지 압류를 걸며 집요하게 채무 상환을 요구했다. 그 엘리엇이 이번에는 삼성을 겨냥한다.



아르헨티나 디폴트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2001년, 1천억 달러 규모의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고 채권단에 71~75%의 채무를 탕감해달라는 내용의 채무조정을 요청했지만, 엘리엇은 이를 거절하고 아르헨티나 정부가 빚을 갚지 않는다며 2012년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엘리엇은 액면가 13억3천만 달러의 국채를 4800만 달러의 헐값에 사들였으면서, 소송에서는 액면가 전액을 상환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미국 법원은 2014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16억 달러를 상환해야한다며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모든 채권자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파리 파수' 조항에 의해 아르헨티나 정부가 갚아야 할 부채는 16억 달러가 아닌 850억 달러로 불어났다. 외환보유액 200억 달러에 불과했던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위기는 현실화되었다.


⊙ 아르헨티나를 괴롭히던 엘리엇, 삼성을 겨냥하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이 13.99%에 불과하다는 약점을 파고 들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다. 



삼성물산



현재 오너 일가와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7.65%에 불과하다. 현재는 계열사 지분이 순환출자 구조로 얽혀있어 경영권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새로운 공정거래법에 따라 순환출자를 완화해야 하고, 지분법 회계처리 기준인 지분 20%를 확보하려면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 반드시 필요하다.


엘리엇은 이런 계획을 읽고 삼성물산 지분을 야금야금 사들였다. 지난 2~3월께 삼성물산의 지분 4.95%만을 사들여 주식 대량보유공시제도인 '5% 룰'을 피한 뒤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발표를 기다렸다. 합병을 발표하자 엘리엇은 지분을 2.17% 더 사들이며 본격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 엘리엇은 '먹튀' 전략의 달인



엘리엇



만약 엘리엇의 의도대로 합병이 무산될 경우, 제일모직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지키기 위해선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이는 데 적어도 8조원, 많게는 16조원을 써야 한다. 제일모직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2134억원, 매출이 5조1296원을 감안하면 이는 불가능하다.


엘리엇의 과거 행적을 보면 '합병 반대 천명→소액주주 운동→행정 소송→기업가치 부풀리기→차익실현'으로 이어지는 헤지펀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엘리엇은 부실하거나 합병을 앞둔 기업의 지분을 상당량 사들이거나 기업 자체를 인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바이아웃(buy-out)' 투자전략을 주로 써왔다.


시장에서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가를 단기간에 끌어올린 후 차익을 실현하고 돌아갈 것으로 봤으나, 지금은 해외에서의 소송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엘리엇은 장기 소송에 익숙하지만 지배구조 재편을 마무리해야 하는 삼성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엘리엇 주요 행보



⊙ 상속세법 피하려다 엘리엇을 맞닥뜨리다


엘리엇은 현재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비율(1대0.35)을 문제 삼고 있으나, 소송 무대가 국내에 국한된다면 삼성의 승산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엘리엇이 외국인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 등을 규합하면 주식매수청구권을 청구하거나 3분의 1 이상의 합병 반대표를 모을 수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합병 결의에서 삼성이 승리한다 해도 엘리엇이 국제소송 카드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물산의 자산이 제일모직의 3배 수준인데, 외국에선 합병비율을 정할 때 주가는 물론 자산가치도 반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법에 문제가 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삼성이 상속재산의 66%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법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 재편에 나섰으나, 오히려 헤지펀드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여 골치 아픈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있다. 편법적 수단으로 기업 승계를 하기보다는 국민경제를 헤아린 판단을 했다면 이런 상황을 맞닥뜨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