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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클레오파트라, 엘리자베스 여왕 등 초상화에 숨겨진 비밀

역사 책에서, 박물관에서, 왕과 왕비의 초상화나 조각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 있을까?

 

왠지 정해진 틀이 있을 것만 같던 왕과 왕비의 얼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 예컨대 이집트의 람세스와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둘 다 권력을 과시하는 이미지와 제스처를 보여주지만 람세스의 아우라는 장엄하며, 루이 14세는 화려하다.

 

▶ 람세스 2세의 조각상

 

람세스 2세

 

대영박물관에서 매년 수십만 명의 관람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람세스 2세는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왕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직접 드러낸 전승 기념비를 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무승부로 끝난 카데시 전투를 '람세스의 승리'로 기록해 놓으며 승리의 역사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람세스 2세는 한 나라의 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를 넘어 '위대한 제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이 서로 람세스 2세의 거대 석상을 가져가려고 경쟁하는 바람에 석상은 처참한 모습을 띠게 되고 말았다.

 

▶ 아우구스투스의 청동 두상

 

아우구스투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손꼽히는 아우구스투스는 초인적 존재로서 신성화되기까지 한 로마의 황제다. 그의 얼굴을 모델로 한 청동조각상은 번득이는 안광과 살아 숨쉬는 듯한 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의 두상은 그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의 모습이다.

 

두상의 모습은 30대 안팎으로 매우 젊어 보이는데, 그는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이런 '전성기의 젊음'을 유지한 두상을 로마제국 곳곳에 세워놓았다. 노화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그의 청동두상은 영원한 젊음과 영광, 그리고 권력의 상징이다.

 

▶ 클레오파트라와 줄리어스 시저의 만남

 

클레오파트라 시저

 

클레오파트라는 부하 아폴로도루스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가, 거대한 카펫으로 몸을 감아 몸을 숨기고 시저가 머무는 궁에 잠입한다. 시저에게 바치는 선물인 카펫으로 위장하여 시저의 침소로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한 그녀는 시저의 마음을 사로잡아, 남동생과 공유하고 있던 이집트의 왕권을 확실히 독점하는 데 성공한다.

 

작품 속에서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로마의 황제 시저 앞에 당당히 선 클레오파트라의 전신상이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그녀는 남성을 유혹하여 자기 목적을 달성한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니라 자기만의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던 뛰어난 정치가였다.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만남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

 

시저가 로마에서 정적들에게 암살당하고 난 후 클레오파트라의 통치권이 흔들리게 된 시기에,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 안토니우스가 찾아온다. 깊은 사색에 빠진 듯한 클레오파트라에게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안토니우스가 다가간다. 나일강에 띄운 배 위에 비스듬히 누운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은 시저와의 첫 만남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헨리 8세의 초상화

 

헨리 8세

 

'트러블메이커 국왕'이었던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주름이나 모공까지 보이는 디테일을 갖고 있다. 당시 유럽 군주의 초상화들이 긴 칼이나 지휘봉 같은 '제왕의 소품'으로 "내가 왕이다!"라고 선포하는 듯 하다면, 이 초상화는 그런 소품들 없이도 제왕의 얼굴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자부심 넘치는 표정과 위압감 주는 포즈로 말이다.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왕의 '허세'가 아닐까 싶다. 헨리 8세는 다혈질과 고집불통에다가 허풍까지 엄청나게 셌다고 한다. 그는 특유의 매력과 대중을 감화시키는 능력으로 백성들의 호의를 이끌어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새로운 결혼과 자유로운 인생을 위해 국교를 바꿀 만큼 자신감이 컸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살았던 여인들은 하나같이 불행했다. 영국의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뀌게 하여 가장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는 앤 불린도 마찬가지였다.

 

▶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튜더 왕조의 마지막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놀랍게도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어머니는 끔찍하게 사형을 당하고, 아버지는 끝없이 파트너를 바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장 위대한 통치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자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부모의 실패한 결혼에 대한 부담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다. 아름다운 액세서리들과 레이스로 장식된 그녀의 초상화 속 표정이 슬프고 외로워 보이는 것은 위대한 통치자였지만 별로 순탄치는 못했던 그녀의 삶을 나타내는 듯 하다.

 

'왕의 권력'을 상징한 초상이나 기념비를 만든 이들은 '백성'이다. 그래서 그런 작품은 단지 한 나라의 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나타낸다. 왕과 왕비의 얼굴 뒤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백성의 땀과 눈물, 그리고 미소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