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5연패에 도전하는 프로야구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

5연패에 도전하는 프로야구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일까? 선수시절 최고의 커리어를 쌓았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류중일 감독. 코치와 감독의 길을 걸으면서 최고의 복장(福將)으로 불리는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을 살펴보자.


“어떤 일이 생기든 딱 세 번만 참자” 


류중일 삼성 감독이 프로야구 사상 첫 통합 5연패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류 감독의 오른 팔목에는 통산 9번 우승을 기념하고 올해 5년 연속 우승을 염원하는 숫자 ‘9&5’가 새겨진 팔찌가 채워져 있다.


류중일(52) 감독이 이끄는 삼성은 올 시즌 전대미문의 통합(정규시즌+한국시리즈 우승) 5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어떤 팀도, 어느 감독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연착륙한 감독이 또 있을까. 2011년 삼성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난 뒤 곧바로 정상을 정복하더니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최고 자리를 지켜냈다. 류 감독은 명장(名將)의 필요충분조건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다.


# 지난 9월 1일 마산구장. 삼성과 NC가 정규시즌 일정표에 잡혀 있는 마지막 2연전을 시작했다. 언론과 팬들은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라고 했다. 8월 31일까지 삼성은 117경기에서 71승 46패로 1위를 지키고 있었다. NC는 선두 삼성을 턱 밑까지 따라온 ‘추격자’로 116경기에서 68승 46패로 2위였다. 삼성과 NC의 간격은 1.5경기.


류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평소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7회까지 2-3으로 끌려갔다. 1-3으로 뒤진 5회초 2사 만루와 2-3으로 쫓아간 7회초 2사 2·3루의 역전 찬스에서 5번 박석민이 두 번 모두 삼진으로 돌아섰다. 아쉬웠다. 그러나 류 감독은 내색하지 않았다. 삼성은 8회초 3-3 동점을 만들었고, 9회초 6번 이승엽의 2점 홈런 등을 앞세워 6-3으로 역전했다. 마무리 임창용이 9회말 이종욱에게 동점 3점포를 맞는 바람에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삼성은 연장 10회초 박해민의 빠른 발과 공격적인 베이스러닝 덕에 7-6으로 승리했다.


# 9월 2일 마산구장. 비가 오락가락했다. 삼성은 전날 짜릿한 연장 승리의 기운을 1회부터 이어갔다. ‘K(삼진)’자 2개를 그리며 고개를 떨궜던 박석민이 힘을 냈다. 박석민은 1회 초 2사 1·3루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선정하는 8월 월간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차지한 NC 선발 에릭 해커를 두들겨 시즌 19호째 좌중월 3점 아치를 그렸다. 타선 폭발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박석민은 11-0으로 앞선 6회초 무사 1루에서 또 한 번 마산구장의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을 쏘아 올려 13-0을 만들었다.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결국 이날 경기는 6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났다. 삼성이 13-0으로 이겼다. ‘추격자’ NC와의 승차를 3.5경기로 벌렸다.


삼성은 9월 13일까지 128경기에서 78승 50패, NC는 127경기에서 73승 2무 52패를 각각 기록했다. 삼성은 NC와의 2연전을 싹쓸이하면서 사실상 사상 첫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류중일 감독은 참고 기다리는 지도자다. 서두르지 않는다. 장기 레이스를 이끌어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늘 그라운드에 있었기에 머리는 물론 마음으로, 몸으로 배웠다. ‘어떤 일이 생기든 딱 세 번 참으라’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과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소중하게 품고 산다. 조금이라도 탈이 난다거나, 이상이 있으면 스스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그라운드에 나가 던지고, 뛰고, 때리는 것은 감독이나 코치가 아닌 선수 자신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9월 1일 마산 NC전에서 주전 3루수 겸 5번으로 나간 박석민이 결정적인 기회에서 삼진으로 돌아섰지만 말없이 기다렸고, 박석민은 다음날 홈런 2개를 팀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기다림과 끌어안기, 사자를 춤추게 하다


선수들에게 무한신뢰를 보낸다. 한국나이로 마흔 줄에 들어선 마무리 임창용(39)이나 이승엽(39)은 물론 박한이·채태인·최형우 등 베테랑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언제든지 제몫을 해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위기가 와도 가만히 놔두면 다 해결된다”고 말하곤 한다. 단기처방을 내리거나 코칭스태프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자꾸 여기저기 손을 대고, 이리저리 간섭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무리수보다 순리대로 조직을 관리하면서 ‘최강 삼성’을 만들었다. 선수들이 최적의 자리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란 지론을 실천한다.


류 감독의 조직관리 스타일을 ‘형님 리더십’이라 일컫는다. 그라운드에서 ‘절대권력’을 지닌 감독이지만 독선에 빠지지 않는다. 혼자만의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치와 선수들이 편한 분위기에서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도록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조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한 끝에 결단을 내리면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삼성 류중일호(號)’의 참모진에는 류 감독의 소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류 감독은 2011년 지휘봉을 잡자 SK에 있던 경북고 2년 선배인 김성래 코치를 수석코치로 데려왔다. 삼성에서 줄곧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들인 장태수·양일환 코치 등도 유임시키면서 2군에서 젊은 선수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보태도록 했다.


특히 전임 선동열 감독과 함께하다 KIA로 떠났던 김평호 1루 코치를 2014년 다시 영입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뛰는 야구’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김 코치는 군산상고와 동국대를 졸업했다. 해태·쌍방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삼성맨’이 아니다. 그러나 류 감독은 김 코치의 장점이 팀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함께 코치 생활을 할 때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상대 투수나 수비진의 움직임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주자가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판단력 등 배울 점도 많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류 감독은 ‘뛰는 야구’를 강조한다. 김 코치가 합류한 지난해 삼성은 팀 도루 161개를 기록했다. 2011년 158개, 2012년 125개였던 팀 도루가 2013년 95개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수직 상승했다. 올 시즌에도 9월 13일 현재 139개의 팀 도루를 기록 중이다.


삼성은 이승엽·최형우·박석민·채태인 등 언제든 두 자릿수 홈런을 터뜨리는 파워히터들이 중심타선을 지키고 있지만 박해민·김상수·구자욱·나바로·박찬도 등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 중인 ‘발 빠른’ 선수들과의 조화로 공격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도루뿐 아니라 한 베이스를 더 갈 수 있는 공격적인 베이스러닝이 모든 선수들의 몸에 배도록 했다.


리더의 포용력이 ‘강한 삼성’의 밑거름이 됐고, 사상 첫 5년 연속 통합 챔피언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류 감독은 참고 기다린다. 1군 선수나 코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포용력과 어우러져 모든 사자들을 춤추게 하고 있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 빠르고 강하게”


1. 지난해 11월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승리하며 통합 4연패를 이룬 류중일 감독이 우승 주역인 안지만에게 샴페인 세례를 받고 있다. / 2. 2011년 1월 5일 경산볼파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김인 사장과 악수하고 있는 류중일 감독.


의외였다. 선동열 감독에 이어 류중일 감독이 삼성의 지휘봉을 잡으리라 생각한 야구 관계자들은 많지 않았다. 경북고와 한양대, 삼성에서 최고 유격수로 명성을 쌓았지만 지도자로선 수비·작전코치를 경험한 것이 전부인 까닭이었다.


2011년 1월 5일, 경산 볼파크에서 류중일 감독의 취임식과 선동열 감독의 이임식이 열렸다. 삼성이 사령탑으로 류중일 코치를 선임했다는 발표 이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과연 김응용 감독이나 선동열 감독처럼 특유의 카리스마로 개성 강한 삼성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을까. 2000년 해태 출신인 김응용 감독을 전격 영입한 이후 선동열 감독으로 이어가면서 만들어진 강한 삼성의 이미지는 어찌 될까. 김응용 감독이 이끈 2002년, 선동열 감독이 해낸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모두 반신반의했다.


류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고 분명히 했다. “스스로 준비가 덜 된 상태”라고 인정하면서도 “목표는 우승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모든 야구인의 꿈인 감독 자리에 오른 만큼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걱정과 자신감이 뒤섞여 있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김응용 감독이나 선동열 감독은 ‘순혈 삼성맨’이 아니다. 그러나 류 감독은 누구보다 ‘삼성’을 잘 알고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해 자신의 색깔로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새 코칭스태프와 함께 스프링캠프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세웠다.


류 감독은 ‘생각하는 야구’, ‘한 박자 빠른 야구’, ‘화끈한 공격 야구’를 팀 운영 방침으로 정한 뒤 사령탑으로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전략과 전술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스프링캠프부터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자유롭게 뛸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하자”고 거듭 강조했다.


첫 스프링캠프부터 시련이 닥쳤다. 연습경기를 하면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더 많았다. 부상 선수만 늘어갔다. 걱정이 밀려와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베테랑이나 주축 선수들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시범경기에 들어갔지만 과정과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장기레이스의 승부는 7~8월 한여름에 판가름 나기 마련이다. 주문을 외듯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특히 재활 중이던 왼손 에이스 장원삼의 첫 등판을 결정할 때 더욱 신경을 썼다. 하루라도 빨리 마운드에 올려 승리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100% 컨디션을 되찾을 때까지 충분하게 시간을 줬다.


장원삼은 개막 한 달 뒤인 4월 30일 1군에 합류했고, 25경기에서 8승 8패와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2년 17승, 2013년 13승, 지난해 11승 등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리면서 류중일 감독이 사상 첫 통합 4연패의 금자탑을 올리는데 밑거름이 됐다.


2011시즌 초반 중위권에 머물렀던 삼성은 서서히 힘을 내면서 선두로 올라섰고 79승 4무 50패로 당당히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했다. 류 감독이 세운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선 정규 시즌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략에 따라 장기 레이스를 운영한 값진 결과였다.


우려를 영광으로, 진정한 ‘야통’


삼성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SK를 만난다. ‘초보’ 류중일 감독은 ‘백전노장’ 김성근 감독에 이어 시즌 막바지 이만수 감독대행이 바통을 이어받은 SK를 4승 1패로 꺾었다. 삼성의 큰 바람이었던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우려를 영광으로 바꿔놓았다.


류 감독은 선동열 감독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2014년에 후임자로 선택받지 못하면 영영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3년 앞서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11월 29일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 결승에선 ‘일본 챔피언’ 소프트뱅크까지 5-3으로 꺾고 첫 우승의 영광도 맛봤다.


삼성은 2012년에도 80승 2무 51패로 정규시즌 1위에 오른 뒤 한국시리즈에서 또 한번 SK를 4승 2패로 물리쳤다. 통합 2연패를 달성했다. 감독 데뷔 이후 2년 연속 우승은 선동열 감독에 이어 두 번째였다. ‘야신’이라 불리던 김성근 감독을 빗대 ‘야구 대통령’의 줄인 말인 ‘야통’이란 별명이 붙었다. 팬들의 입에서 점점 퍼져나갔다.


류 감독은 부담스러웠다. “아직 그런 거창한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야구 아이돌’을 줄인 ‘야돌’이 좋다”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야통’ 류중일 감독은 2013년 시련을 겪었다. 3월에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 볼클래식(WBC)에서 지휘봉을 잡았지만 예선에서 탈락했다. ‘국내용 감독’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선수로 못 다 이룬 꿈, 감독으로 이루다


류중일 감독은 대구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부인 배태연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류 감독의 자택에 있는 가족사진.


페넌트레이스도 힘겨웠다. LG·두산·넥센 등 수도권 팀들과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친 끝에 75승 2무 51패로 간신히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지켰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두산은 강했다. 4차전까지 1승 3패로 밀리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면서 4승 3패로 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통’은 확실한 닉네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류 감독은 ‘야통’이란 별명을 ‘야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 같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뿌듯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류 감독은 지난해 78승 3무 47패로 정규시즌 1위에 이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넥센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2패로 챔피언 등극을 이끌면서 명실상부한 명장 반열에 올랐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나는 삼성맨으로 살아왔다. 선수·코치에 이어 감독까지 맡았다.”


류 감독은 행운아다. 복장(福將)으로 통한다. 평생 파란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 최상의 성적을 올리면서 명장이 됐다. 1987년 삼성에 입단했으니 어언 30년이다. 삼성의 ‘파란 피’가 흐른다. 삼성의 정신과 기업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다.


1999년까지 내야 수비의 핵인 유격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볐고,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코치로서 후배들을 지도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계약을 끝낸 뒤 역대 프로야구 최고 대우인 총 21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5억원)으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재계약했다.


류 감독은 대구 토박이는 아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포항초교 2학년 때 처음 공을 잡았다.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5학년 때 대구초교로 전학했다. 하지만 또 해체되는 통에 삼덕초로 옮겼다. 그리고 대구중·경북고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잘했다. 경북고 시절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1981년 경북고를 전국 최강으로 올려놓았다. 청룡기·황금사자기·봉황기를 모두 차지하는 데 주역이었다. 1982년 7월 잠실구장에서 열린 개장 기념 초청 경기에선 첫 홈런을 날린 주인공으로 이름을 남겼다. 한양대를 거쳐 프로야구 삼성에 입단해서도 승승장구 최고의 길을 걸었다.


입단 첫해인 1987년에는 4회 연속 수상자였던 김재박을 제치고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1년에도 황금장갑을 차지했다. 야구 센스와 수비력이 뛰어난 유격수로 평가받았다. 타구 판단능력이나 글러브 핸들링, 정확한 송구 등이 일품이었다.


류 감독은 1990년 120경기에 나가 최고시즌을 보냈다. 타율 0.311(5위)와 45타점, 23도루(4위)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해태까지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LG에 우승의 기쁨을 내줬다.


류 감독은 199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때 우승 한 번 못한 게 한”이라며 숫자 ‘1’이 뚜렷했던 선수 유니폼을 반납했다. 프로 13년 통산 1095경기에 나가 타율 0.265, 홈런 45개를 포함한 안타 874개, 타점 359개, 득점 475점, 도루 109개의 기록을 남겼다.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역 시절 단 한 번도 챔피언 반지를 끼지 못했다. 최고의 자리는 늘 해태의 몫이었다.


류 감독은 삼성 출신으로 한국야구사의 명(名)유격수 계보를 이어간 스타 플레이어였다. 김재박 KBO 경기감독관이나 이종범 MBC플러스 해설위원 등과 함께 유격수의 전설로 남아 있다.


류 감독은 감독으로서 4년 연속 통합 챔피언을 이끌면서 ‘한풀이’를 뛰어넘어 ‘삼성 왕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류 감독은 코치로서 첫 우승을 맛보고, 감독으로서 4차례나 우승했지만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류 감독에게 5년 연속 통합 우승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도전이다.


류 감독은 선수로서, 코치로서 많은 감독과 함께했다. 그들의 장단점을 모두 보고, 듣고, 느꼈다. 새내기 시절 박영길 감독부터 정동진·김성근·우용득·백인천·서정환·김용희·김응용·선동열 감독까지 무려 9명이다. 같은 듯 다른 야구 철학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류중일 방식으로 융합했다.


류 감독은 지난해까지 감독으로서 312승 11무 199패를 기록했다. 승률 0.611. 이미 역대 최소 경기(336경기) 통산 200승과 300승(493경기)을 달성했다. 선수로서 못 다 이룬 꿈을 삼성 감독으로서 채워가고 있다.


▤소통과 인화, 어제를 알고 내일을 미리 준비한다


류 감독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첫 계약 기간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기(期)를 이끌어가고 있다. 올해는 프로야구 사상 첫 5년 연속 통합 우승에 도전 중이다. 류 감독은 1기 3년을 ‘형님 리더십’을 앞세운 ‘덕장(德將)’ 스타일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2기 3년은 ‘지장(智將)’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류중일의 삼성’을 만들어가겠다는 뜻이다.

류 감독은 누구보다 삼성의 어제를 잘 알고 있다. 오늘도 정확하게 분석한다. 미리 내일을 준비하는 이유다. 자연스런 세대교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장기적인 선수 수급을 어떻게 할지 등 큰 그림을 먼저 그린다. 그 안에서 준비하고, 양성하고, 강한 사자로 만들어 상대와의 싸움에 투입한다.

류 감독은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늘 구단과 대화하고, 소통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파악한 뒤 실천 가능한 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삼성에는 ‘BB 아크(Baseball Building Ark)’란 야구 사관학교가 있다. 2군이나 3군의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류중일 감독이 제안하고, 김인 사장이 흔쾌히 받아들여 지난해 6월 개관한 훈련 캠프다.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했다. 30년을 넘어서면서 각 구단의 살림살이 규모도 엄청 커졌다. 이제 육성 선수까지 포함하면 대략 80~100명을 거느리고 있다. 1군 25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2군이나 3군 또는 재활군 등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류 감독은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을 통해 전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하고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지속적으로 팀 전력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운영 역시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직접 나섰다. 1군, 2군과도 유기적인 업무 협조를 통해 BB 아크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이 실전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분적인 훈련 매뉴얼의 통일을 통해 선수들이 느낄 수 있는 혼란스러움도 해소했다.

BB 아크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투수는 물론 야수에서도 기존 선수들을 대체할 수 있는 유망주들이 눈에 띄고 있다. 지난해부터 펄펄 날고 있는 박해민과 올 시즌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구자욱 등이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탄생한 선수들이다.

지난해 여름, NC전을 치르기 위해 마산구장을 찾은 류 감독은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상대팀의 라커룸으로 갔다. 근력 강화와 유연성 운동에 좋은 기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류 감독은 NC 트레이너에게 사용법과 효과 등에 대해 일일이 질문하면서 옆에 있던 매니저에게 삼성도 이른 시일 안에 구입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류 감독은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구단과의 대화는 늘 합리적으로 진행한다. ‘삼성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부딪힐 일이 없다. BB 아크를 만드는 과정도 그랬고, 내년 시즌부터 사용하는 신축 구장의 시설과 관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과정도 그렇다.

삼성은 올 시즌을 끝내면 대구 시민야구장을 떠난다. 내년 시즌부터 대구시 수성구에 들어서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사용한다. 류 감독은 1948년 개장한 대구 시민야구장을 평생을 잊을 수 없다. 야구선수로서 어린 꿈을 키우고, 감독으로 꿈을 이룬 곳이다. 다시는 설 수 없는 영욕의 대구 구장에서 통합 5연패를 달성하고 싶은 간절한 이유다.

류 감독은 ‘9&5’란 숫자가 찍혀 있는 팔찌를 끼고 있다. 1985년 전·후기 통합 1위를 차지한 것을 포함한 통산 9번째 우승과 5년 연속 통합 우승을 기원하는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