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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건축의 도시, 바르셀로나의 매력 속으로!

따사로운 햇살 아래 라스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의 여유, 예술과 낭만이 채색된 거리에서 누리는 자유, 평범한 축제의 뜨거운 열기까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이 도시를 두고 ‘유럽의 꽃’이라 칭송했다. 이곳은 바로, 바르셀로나!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여주인공 크리스티나는 바르셀로나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한다. “바르셀로나 자체를 찬양하고 싶어 작품을 기획했다”는 우디 앨런의 말처럼 영화 속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 도시에 가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낭만’에 사로잡히게 한다.

 

바르셀로나를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디 앨런과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랬듯, 바르셀로나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여행자에겐 완전한 쉼과 해방을, 예술가에겐 자유의 정서를, 거주민에겐 긍정의 삶을….

 

FC 바르셀로나

 

“여느 유럽 도시들보다 더 도시 같아.”

 

바르셀로나를 다녀간 여행자로부터 종종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유서 깊은 유럽의 다른 도시처럼 역사적 전통과 웅장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널찍한 차도와 깔끔한 거리가 마치 모범생을 보는 듯 반듯하고 정갈한 게 ‘도시 중의 도시’ 같다는 것이다.

 

건축의 도시답게 바르셀로나 거리에는 다양한 개성의 독특한 건물이 가득하다.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든 서로 다른 매력의 건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울 것이다. 이는 건축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칫 어지러울 수 있는 건물을 조화롭게 만드는 단조로운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시내 관광을 위해 지도를 펼쳐 들면 차도와 길이 바둑판 모양으로 동일하게 나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단순한 구조덕에 길눈이 어두운 사람도 바르셀로나를 쉽게 돌아볼 수 있다.

 

▒ 시대를 앞선 도시계획의 성과

 

바르셀로나가 지금과 같은 구조를 갖게 된 건 19세기 후반 옛 성곽이 무너지면서부터다. 이 시기 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는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막기 위해 모든 건물의 앞면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바르셀로나의 신시가지를 정사각형 구획으로 나누었다. 이 정사각형 모양의 시가지를 ‘에이샴플라(Eixample)’라고 부른다.

 

이 구역 안에는 600여 개의 ‘만싸나(Manzana)’가 존재한다. ‘블록’을 의미하는 만싸나는 한 변이 113m인 정사각형 공간으로, 이 안에 건물 여러 개가 네모난 도넛 모양으로 배열돼 있다. 역사가 오래된 호텔이나 건물에 들어서면 종종 가운데 비어있는 공간에 ‘정원’이 꾸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도넛 모양의 이 구조 때문에 생긴 정원이다.

 

바르셀로나 시가지

 

‘만싸나’는 건물의 토대가 되는 공간인 동시에 도시를 이루는 하나의 ‘셀’ 역할을 한다. 지금도 바르셀로나의 모든 도시개발은 이 단위를 기본으로 진행된다. 한 ‘만싸나’ 안에 여러 건물이 세워져 있는 까닭에 재건축을 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거리를 걷다 보면 10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낡은 건물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건물 안을 보수할지언정 건물 자체를 허물거나 새로 짓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만싸나’ 를 기본 단위로 삼은 세르다의 계획이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확장을 막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일반인에겐 ‘가우디의 도시’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세르다의 도시계획을 일찍부터 연구한 건축학계에는 농담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세르다가 차린 밥상에 가우디가 숟가락만 얹었다.” 한 세기를 앞선 세르다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도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란 의미다.

 

▒ '염원'이 담긴 랜드마크, 성가족성당

 

그렇다고 해서 바르셀로나를 얘기하며 가우디를 빼놓을 수는 없다. 바르셀로나가 ‘건축과 예술의 도시’로 불리며 여느 유럽 도시와 다른 독특한 개성의 도시라 평가받는 데에는 가우디의 역할이 컸다. 건축가로서의 삶을 시작해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는 바르셀로나를 떠난 적이 없다.

 

역작으로 평가받는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을 비롯해 구엘공원, 구엘저택,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등 대표 작품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편견과 공식을 깨는 독특한 건축법으로 주목받는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두고 ‘기괴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그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엉뚱하고 특이하다.

 

 

성가족성당

 

 

특히 바르셀로나 중심에 우뚝 선 성가족성당은 화려미가 돋보이는 유럽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웅장미가 돋보인다. 1883년 첫 삽을 떴지만 가우디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채 완성되지 못한 성당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여전히 공사 중이다. 건축 당시에도 시민의 기부로만 공사를 진행한 그 정신을 이어 공사는 전적으로 입장료와 방문객들의 후원으로만 이뤄진다. 성가족성당이 단순한 랜드마크를 넘어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정성 때문일까? 1999년 바르셀로나는 도시로서는 처음으로 뛰어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리바상(RIBA)’의 주인공이 됐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가 2년에 한번씩 수상하는 이 상은 본래 건축계에 공헌한 건축가에게 수상하는 상이나, 바르셀로나는 19세기부터 이어온 아름다운 계획도시라는 점과 ‘사람을 위한 도시’를 가꾸는 데 정성을 다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 도시가 선사한 편안한 일상에 대한 보답

 

바르셀로나 도시계획의 강점은 ‘디자인’보다 도시의 주인인 ‘시민’의 동선을 고려했다는 데 있다. 체계적인 거리구획은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가능케 했고, 보행자 중심의 도로는 사람들의 이동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다른 대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노인과 어린아이, 장애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관광지라도 유모차와 휠체어를 끌기 용이하게 도로가 나 있고, 모든 버스는 몸이 불편한 승객이 언제고 손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문의 턱을 낮추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실제 한낮 카페 야외 테라스석에는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은 백발의 노인이 가득하다. 한 손은 지팡이를, 나머지 한 손은 배우자의 손을 꼭 잡고 시내를 거니는 노부부의 모습도 이 도시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한국에선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는 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 엄마들은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나와 친구를 만나고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포켓파크(Pocket park, 소공원)’는 사람들의 일상에 여유로움을 더한다. 카페나 식당의 야외테라스 석 한쪽엔 부모들이 맘 놓고 아이들을 뛰어놀게 할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위치한다.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 신분으로 이들의 일상을 경험하다 보면 이와 같은 도시의 배려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엔 유독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주인의식’이 강한 이곳 사람들을 보며 의아할 수 있으나, 곧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들이 이토록 자신들의 터전을 사랑하는 건 도시가 선사한 편안한 일상에 대한 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