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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중국 시장 입맛 맞추는 할리우드 영화

자유무역 지지자들은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힘과 자유 시장의 매력이 중국에 미국의 가치관을 전파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최고 인기 수출품 중 하나인 할리우드 영화를 기준으로 볼 때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소니 픽처스의 간부들은 아담 샌들러 주연의 영화 <픽셀>의 중국 배급을 위해 만리장성 파괴 장면을 들어내는 등 여러 가지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 전했다.


자유무역 지지자들은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힘과 자유 시장의 매력이 중국에 미국의 가치관을 전파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최고 인기 수출품 중 하나인 할리우드 영화를 기준으로 볼 때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사들의 중국 박스 오피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제작자들이 중국의 엄격한 검열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 내용을 조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중국은 할리우드의 문화적 관습을 포용하기는커녕 미국 영화의 정치적 측면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미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의 보고서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지난 2015년 10월 말 발표된 이 보고서는 할리우드 최대의 블록버스터 작품들에 나타난 중국의 영향을 조명했다. 일부 영화사가 중국 배급을 승인받기 위해 대본을 수정하고 특정 장면을 중국인 취향에 맞춰 완전히 딴판으로 편집한 예도 제시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션 오코너와 니컬러스 암스트롱 연구원은 이렇게 썼다. “중국의 수입 영화 규제와 큰 시장 규모를 생각할 때 미국 영화 제작자들은 중국 검열기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중요한 장면을 들어내거나 주제를 바꾸는 일도 불사한다.”


영화사들이 해외의 특정 시장을 겨냥해 같은 영화를 여러 버전으로 편집한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시장의 경우 이런 경향은 사후 편집을 뛰어넘어 자체 검열 수준에 도달했다. 프로젝트 개발 단계나 영화 제작 중 내용 수정이 논의되는 경우도 많다. 정치적 주제나 중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에 어느 정도 변화를 줄지를 놓고 영화사 간부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미국의 가치관 전파는커녕…


그런 변화의 사례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는 장면을 삭제한 경우(예를 들면 좀비 재난 영화 [월드워 Z])부터 만리장성 파괴 장면을 완전히 들어낸 경우까지 다양하다. 소니 픽처스 홈페이지 해킹 때 유출된 e메일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는 소니 영화사 간부들이 아담 샌들러 주연의 재난 영화 [픽셀]에 적용한 여러 변화 중 하나다. 보고서에 제시된 다른 사례 중 2012년 리메이크된 [레드 던]의 경우는 침입자들이 중국군에서 북한군으로 바뀌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이런 양보를 하는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중국 증시 폭락에 관한 보도가 봇물을 이뤘지만 중국 박스 오피스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중국 관객의 관심이 특수효과가 넘쳐나는 할리우드의 고예산 영화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영화 티켓 매출은 48억2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일부 분석가는 3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한편 박스 오피스 모조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 할리우드 영화의 박스 오피스 수입은 약 20억 달러로 2012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영화사는 중국 검열 당국의 비위를 거스를 경우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디즈니의 [캡틴 필립스]가 좋은 예다. 중국 검열기관이 미군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영화 수입을 금지해 흥행수입이 예상치보다 900만 달러나 적은 수준에 머물렀다.


영화사들이 영화의 중국 시장 배급을 위해 내용을 적극 조정하고 나서면서 미국 관객을 위한 버전의 정치적 주제도 제한을 받는 경우가 늘어난다. 감독과 작가, 배우들의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중국의 폭넓은 금지 기준은 자국민을 위한 검열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영화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오코너와 암스트롱은 썼다.


보고서는 미국 영화에 대한 중국의 엄격한 규제가 단지 문화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수입 전면 개방을 명시한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몇 년 동안 이 협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이 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오바마 정부의 노력으로 중국은 미국과 연간 수입 영화 제한 편수를 20편에서 34편으로 늘리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수입 제한 편수 증가가 곧 WTO 협정의 준수를 의미하진 않는다. “WTO는 중국에 오락상품을 무제한 수입할 수 있는 권한을 국내외 개인과 기업에 똑같이 제공할 것을 중국에 요구했다”고 오코너와 암스트롱은 썼다.


보고서는 또 미국 통상대표부의 2014년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과 중국의 협정이 타결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시장 개방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썼다. 중국 영화 업계에는 미국 영화협회(MPAA)와 같은 영화 등급 제도가 없다. 대신 중국 광파전영전시총국(SAPPRFT)이 검열관들의 눈에 문화적으로 합당치 않다고 보이는 콘텐트를 차단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쥐고 있다.


▒ 중국 검열 당국은 세계 영화의 경찰 역할?


이번 보고서를 통해 일부 미디어 논평가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됐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시장지배력이 미국 오락물에 대한 지나친 영향력을 공산당에 부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 검열 당국은 영화 속에서 중국과 중국 정부가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감시하고 규제해 세계 영화의 경찰 역할을 한다”고 스태튼아일랜드대학의 미디어문화학 교수 잉주는 말했다. “중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영화는 국제 영화계에서 금기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