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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국과 일본, 치명적인 매력의 중년 남성들이 대세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최근 두 나라에서 공통점을 하나 꼽으라면 '치명적인 중년 남성'들이 대세로 떠올랐다는 점. 일본에서는 '우레단'이라 불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꽃중년'이라 불리는 중년 남성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신사의 품격

▎한국의 대표적인 꽃중년을 그린 SBS드라마 <신사의 품격>. / 사진제공·SBS


▒ 젊은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저씨들


후쿠오카에서 와인바를 경영하는 하기야마(50·가명) 씨는 이혼을 경험한 독신남으로 현재는 19세 연하인 여자친구 료코 씨와 동거 중이다. 손님과 주인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하기야마 씨가 료코 씨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카운터에 앉아서 동료들과의 갈등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료코 씨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하기야마 씨는 “힘들 때는 언제든지 전화하라”며 전화번호를 건넸고 이후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처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는 한 시간이나 아무 말 없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같은 세대 남성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포용력과 배려심에 매료된 것 같아요. 2년째 같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경청해주고 투정을 다 받아주어서 마음이 든든해요.” 료코 씨는 하기야마 씨와 같은 중년남성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도쿄의 IT기업에 근무하는 메구미(22) 씨는 45세의 직장 상사 고바야시(가명) 씨와 사내연애 중이다. 지난해 가을, 업무상의 실수로 인해 위기에 몰린 메구미 씨를 고바야시 씨가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제가 거래처에 보내는 메일을 서로 바꿔 보내는 바람에 큰 곤경에 처했을 때 저를 대신해 일을 수습해주었어요. 신입사원인 저는 실수를 깨닫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가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서 사과하고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해주었어요. 그에게 미안해서 한밤중에 문자로 죄송하다고 했더니 택시를 타고 제가 있는 곳까지 찾아와서 걱정했다며 자상하게 위로해주었어요. 지금도 직장에서 부하들의 실수를 일일이 팔로업해주는 그를 보면 못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해요.”


일본드라마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해줘

▎일본에서는 우레단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등장했다. 51세 남성이 23세 여성과의 결혼을 허락받는 과정을 그린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해줘>. / 사진제공·후지 TV



40대 남성과 20대 여성 맞선파티도 생겨나


하기야마 씨와 고바야시 씨 같은 중후한 중년남성을 가리키는 ‘우레단(熟男)’이 현재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레단이란 라는 중년남성을 위한 패션지가 2012년에 만들어 낸 신조어. 잡지에 따르면 우레단은 “단지 나이가 든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풍파에 단련되고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인생의 쓰라림을 딛고 활동을 계속하는 성숙한 남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말”이다. 

이 우레단 붐과 함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바이이조오(倍以上男: 나이가 배 이상 차이 나는 남자)’, ‘가레센(枯れ專: 아저씨전문)’ 등의 유행어까지 만들어졌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중년남성의 인기가 올라가자 인터넷에서는 우레단 전문 연애사이트가 생겨났으며 결혼정보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을 위한 맞선파티를 열어주고 있다. 

40대 전후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각종 인터넷 소설과 만화가 잇따르고 있으며, 우레단을 소재로 한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51세 남성이 23세 여성과 교제하면서 동갑내기 장인에게 결혼 허가를 받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내용의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해줘!>는 올해 1월부터 후지TV를 통해 방송 중인 인기 드라마다.

젊은 여성들이 중년남성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생 등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인 <캠퍼스 매거진>은 여대생들이 뽑은 우레단의 매력 5가지를 선정했는데, ①마음껏 어리광을 부려도 다 받아주기 때문에 심리적인 위안을 느낀다 ②자신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되고 사소한 잘못쯤은 눈감아 주기 때문에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 ③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데이트를 할 때 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다 ④부모와의 유대관계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마마보이가 거의 없다 ⑤경험이 풍부한 인생 선배이기 때문에 의지가 된다 등등이 젊은 남성에게는 부족한 중년남성만의 매력으로 어필된다고 분석했다.

라이프스타일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트렌드 소겐(トレンド 總硏)이 2014년 12월, 20대 여자 회사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40대 이상 남성의 매력’ 리포트에서 40세 이상의 남성을 보고 끌린 적이 있다고 대답한 여성은 38%였다. 상대는 같은 직장의 상사나 선배라는 대답이 49%로 가장 높았다.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어른다운 여유로움이 있다. 경험이 풍부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섹시하다. 스마트하다. 남성답다’ 등이 열거됐다. 한편 40대 이상의 남성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힘써야 할 점은 ‘청결, 품위, 남성다움, 세련미’ 등을 꼽았다.

심리상담가인 구로이와 히로유키 씨는 우레단 붐에 대해 “여성들이 연상을 선호하는 경향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전엔 연상의 범위가 많아야 5~10세이던 것이, 현재는 40대가 넘어서도 에너제틱하고 외모적으로도 매력적인 남성이 늘어났기 때문에 연상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백세 시대에는 포용력이 있고 호감이 가는 외모에 심리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이라면 연령에 관계없이 인기가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한다.


어용기 타가히로 키노시타

▎부산의 재단사 여용기 씨(왼쪽)는 나이를 거스르는 듯한 패션감각으로 온라인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남다른 패션으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일본 패션매거진 의 편집장 타카히로 키노시타(오른쪽). / 사진제공·여용기 인스타그램, tumblr.com



▒ 한국도 중년남성 열풍, ‘개저씨' 대신 '꽃중년'


요즘 한국도 마찬가지로 중년남성 열풍이 뜨겁다. 중년남성들이 소비와 문화 트렌드의 중심으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신사의 품격> 이후 드라마에서 중년로맨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면, <삼시세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중년남성이 주역으로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3059세대의 중년남성을 주 타깃 층으로 하는 케이블 채널이 개국하여 화제를 모았다. 


CJ E&M이 지난해 9월 새롭게 선보인 채널 O tvN은 새로운 문화 소비의 주체로 자리 잡고 있는 중년층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이덕재 CJ E&M 방송콘텐트부문 대표는 “지금 40~50대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다. 이들이 젊은 마인드로 즐길 수 있는 콘텐트, 인문학적, 심리적, 철학적 부분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콘텐트를 소개하겠다”면서 “시청률이 이슈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화제성이 중요한 시대이다”고 강조했다.


방송계에 이어서 게임시장의 트렌드도 중년남성을 타깃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차승원(70년생), 이병헌(70년생), 장동건(72년생), 정우성(73년생), 이정재(73년생) 등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중후한 매력의 중년 배우들이 최근에게임광고 모델로 대거 기용되고 있다. 10~20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바일 게임의 주 소비층이 30~40세대로 옮겨가는 추세를 따라 업체가 그들에게 친숙한 톱 배우들을 기용하는 등 중년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중년의 티켓파워가 입증된지 오래됐고 출판시장에서도 2014년부터 주요 독자층이 40대 이상의 중년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구조에서 가장 큰 비율을 점하는 세대는 40대(17.2%)와 50대(16.2%)라고 한다. 중년층이 파워소비층으로 떠오르자 마케팅 업계에서는 중년의 소비를 유혹하기 위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특히 그동안 소비시장에서 외면받아 오던 중년남성들을 위한 각종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다.


골드파파족(Goldpapa)이라는 말도 있다. 경제적인 여유를 즐기며 젊은 사람 못지않은 패션 감각을 지닌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권위적인 이미지, 일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고 패션과 미용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자동차, 스포츠 등 자신의 기호, 취미,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고 이를 즐기는 데 열심이다.


그루밍족(Grooming)이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피부와 두발, 치아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노무족(NoMU)은 ‘No More Uncle’이라는 의미로 아저씨라고 불리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40~50대 중년 남성을 지칭한다. 외적인 젊음뿐 아니라 내적인 젊음에도 관심이 많아 자유로운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며 젊은 세대와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루밍


▒ 안티에이징 피부관리는 기본… 외모 투자 아끼지 않아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김성철(47) 씨. 취미는 술, 휴일에는 인어공주 되기(옆으로 다리를 포개고 누워서 꼼짝 안하고 TV만 보는 자세)가 전부였던 그는 최근 꽃중년으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 중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 동준(8) 군 때문이다. 


“결혼이 늦어져서 또래에 비해 아이들이 아직 어린 편입니다. 아들 유치원에 참관수업을 갔을 때 아이 친구들이 아빠가 늙었다고 놀린다는 말을 듣고 안되겠다 싶었죠.” 


김씨는 술자리를 줄이고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운동을 한다. 탈모방지를 위해 값비싼 샴푸와 토너를 구입했고 한 달에 한번 미용실에 들러 염색과 두피 마사지를 받는다. 피부 관리를 위해서 남성화장품도 구입했으며 동준군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맞춰 보톡스 시술까지 받았다.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제 모습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강이나 외모에 대해서 게을리했는데 앞으로는 외모 뿐 아니라 내면을 위한 삶에도 충실하고 싶습니다.”


중년은 청년세대와 노년세대에 ‘낀’ 세대로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제2의 사춘기 혹은 ‘사추기(思秋期)’라고도 불리며 청소년기와 더불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갈등이 많은 시기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Jung, Carl Gustav)은 중년을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누는 ‘인생의 정오’라고 정의하고 ‘사람은 중년기에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내면의 심각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중년의 위기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중년의 위기를 일종의 자기치유의 과정으로 보고 성숙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건강한 변화라는 점을 역설했다.


모든 중년남성이 이러한 것은 아니다. 굳이 꽃중년이라는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혹시라도 '나이'를 핑계로 자신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자기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시작해보자. 그렇다면 당신도 꽃중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