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최근 두 나라에서 공통점을 하나 꼽으라면 '치명적인 중년 남성'들이 대세로 떠올랐다는 점. 일본에서는 '우레단'이라 불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꽃중년'이라 불리는 중년 남성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꽃중년을 그린 SBS드라마 <신사의 품격>. / 사진제공·SBS
▒ 젊은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저씨들
후쿠오카에서 와인바를 경영하는 하기야마(50·가명) 씨는 이혼을 경험한 독신남으로 현재는 19세 연하인 여자친구 료코 씨와 동거 중이다. 손님과 주인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하기야마 씨가 료코 씨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카운터에 앉아서 동료들과의 갈등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료코 씨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하기야마 씨는 “힘들 때는 언제든지 전화하라”며 전화번호를 건넸고 이후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일본에서는 우레단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등장했다. 51세 남성이 23세 여성과의 결혼을 허락받는 과정을 그린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해줘>. / 사진제공·후지 TV
▎부산의 재단사 여용기 씨(왼쪽)는 나이를 거스르는 듯한 패션감각으로 온라인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남다른 패션으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일본 패션매거진 의 편집장 타카히로 키노시타(오른쪽). / 사진제공·여용기 인스타그램, tumblr.com
▒ 한국도 중년남성 열풍, ‘개저씨' 대신 '꽃중년'
요즘 한국도 마찬가지로 중년남성 열풍이 뜨겁다. 중년남성들이 소비와 문화 트렌드의 중심으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신사의 품격> 이후 드라마에서 중년로맨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면, <삼시세끼>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중년남성이 주역으로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3059세대의 중년남성을 주 타깃 층으로 하는 케이블 채널이 개국하여 화제를 모았다.
CJ E&M이 지난해 9월 새롭게 선보인 채널 O tvN은 새로운 문화 소비의 주체로 자리 잡고 있는 중년층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이덕재 CJ E&M 방송콘텐트부문 대표는 “지금 40~50대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다. 이들이 젊은 마인드로 즐길 수 있는 콘텐트, 인문학적, 심리적, 철학적 부분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콘텐트를 소개하겠다”면서 “시청률이 이슈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화제성이 중요한 시대이다”고 강조했다.
방송계에 이어서 게임시장의 트렌드도 중년남성을 타깃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차승원(70년생), 이병헌(70년생), 장동건(72년생), 정우성(73년생), 이정재(73년생) 등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중후한 매력의 중년 배우들이 최근에게임광고 모델로 대거 기용되고 있다. 10~20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바일 게임의 주 소비층이 30~40세대로 옮겨가는 추세를 따라 업체가 그들에게 친숙한 톱 배우들을 기용하는 등 중년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중년의 티켓파워가 입증된지 오래됐고 출판시장에서도 2014년부터 주요 독자층이 40대 이상의 중년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구조에서 가장 큰 비율을 점하는 세대는 40대(17.2%)와 50대(16.2%)라고 한다. 중년층이 파워소비층으로 떠오르자 마케팅 업계에서는 중년의 소비를 유혹하기 위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특히 그동안 소비시장에서 외면받아 오던 중년남성들을 위한 각종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다.
골드파파족(Goldpapa)이라는 말도 있다. 경제적인 여유를 즐기며 젊은 사람 못지않은 패션 감각을 지닌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권위적인 이미지, 일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고 패션과 미용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자동차, 스포츠 등 자신의 기호, 취미,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고 이를 즐기는 데 열심이다.
그루밍족(Grooming)이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피부와 두발, 치아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노무족(NoMU)은 ‘No More Uncle’이라는 의미로 아저씨라고 불리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40~50대 중년 남성을 지칭한다. 외적인 젊음뿐 아니라 내적인 젊음에도 관심이 많아 자유로운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며 젊은 세대와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 안티에이징 피부관리는 기본… 외모 투자 아끼지 않아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김성철(47) 씨. 취미는 술, 휴일에는 인어공주 되기(옆으로 다리를 포개고 누워서 꼼짝 안하고 TV만 보는 자세)가 전부였던 그는 최근 꽃중년으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 중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 동준(8) 군 때문이다.
“결혼이 늦어져서 또래에 비해 아이들이 아직 어린 편입니다. 아들 유치원에 참관수업을 갔을 때 아이 친구들이 아빠가 늙었다고 놀린다는 말을 듣고 안되겠다 싶었죠.”
김씨는 술자리를 줄이고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운동을 한다. 탈모방지를 위해 값비싼 샴푸와 토너를 구입했고 한 달에 한번 미용실에 들러 염색과 두피 마사지를 받는다. 피부 관리를 위해서 남성화장품도 구입했으며 동준군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맞춰 보톡스 시술까지 받았다.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제 모습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강이나 외모에 대해서 게을리했는데 앞으로는 외모 뿐 아니라 내면을 위한 삶에도 충실하고 싶습니다.”
중년은 청년세대와 노년세대에 ‘낀’ 세대로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제2의 사춘기 혹은 ‘사추기(思秋期)’라고도 불리며 청소년기와 더불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갈등이 많은 시기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Jung, Carl Gustav)은 중년을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누는 ‘인생의 정오’라고 정의하고 ‘사람은 중년기에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내면의 심각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중년의 위기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중년의 위기를 일종의 자기치유의 과정으로 보고 성숙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건강한 변화라는 점을 역설했다.
모든 중년남성이 이러한 것은 아니다. 굳이 꽃중년이라는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혹시라도 '나이'를 핑계로 자신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자기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시작해보자. 그렇다면 당신도 꽃중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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