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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무술년, 책상 앞에 써놓으면 좋은 사자성어

무술년, 2018년의 새해가 밝은지 벌써 10일이 흘렀다. 올해는 중앙시사매거진 팬들을 비롯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올해 여러분의 의지를 반영하는 '사자성어' 하나쯤 책상 앞에 써놓고 매일 다짐해보는 것은 어떤지. 책상 앞에 써놓으면 좋은 사자성어를 몇 가지 소개한다.


책 [사기(史記)]에서 올 한해를 보낼동안 마음에 품어볼 만한 사자성어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공자춘추전국시대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의 한 장면. 공자 역을 맡은 저우룬파(周潤發)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무망지복(毋望之福) ‘세상에 그냥 얻는 복은 없다’


‘무망지복’은 바라지 않았는데 뜻밖에 찾아온 복이라는 뜻으로 [사기] ‘춘신군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춘신군(春申君)은 이름이 황헐(黃歇)로 초나라 사람이다.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재상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초나라를 지탱했다. 초나라의 재상으로서 수십 년 동안 초나라의 정세를 안정시키고 주변국과의 긴밀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춘신군이 재상으로 일한 지 25년째 되던 때, 초나라 고열왕이 병에 들었다. 춘신군의 문객 중에 주영(朱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주영이 춘신군에게 ‘세상에는 바라지 않았는데도 얻게 되는 복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께서는 초나라의 재상을 20여 년이나 하고 계십니다. 명목상으로는 재상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으로 보면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고열왕이 병에 들어 위독한 상황입니다. 군께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왕이 죽은 뒤 새로 등극한 어린 왕을 잘 보좌해 대신 국정을 관리하다가 어린 왕이 장성하면 왕권을 잘 전해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왕이 돌아가시면 군께서 왕이 돼 초나라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바라지도 않았던 복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바로 ‘무망지복’이다. 


2016~17년 우리는 엄청난 일을 경험했다. 국민의 열망으로 대통령이 탄핵됐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엄청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 아래서 국민의 요구와 희망이 번번이 좌절됐던 근대사의 경험은 수많은 국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을 때 좌절이 아닌 새 희망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정국이 흘러갈지, 촛불의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터질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절망과 희망의 경계선을 만들어갈지, 나아가 이 행렬의 끝이 어디가 될지,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무망지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무망지복을 받았던 뒷면에는 굉장히 많은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혹은 문화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무망지복을 잘 다듬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 남은 몫이 아니겠는가.


성균관 석전대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거행되는 석전대제(釋奠大祭)에서 유생들이 팔일무(八佾舞)를 추고 있다. 석전대제는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과 선현(先賢)들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가장 규모가 큰 제사다.


고적유명(考績幽明) ‘상벌을 명확히 하면 국민이 안정된다’


옛 기록을 살피다 보면 전쟁을 하고 나면 반드시 장수는 병사들을 위해 호군( 軍)이라는 행위를 한다. 고생한 군사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내려서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이 지나쳐서 점령군들이 점령지의 인명과 재물을 약탈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적정한 수준의 호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나아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면 논공행상(論功行賞)이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전쟁에서 비겁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고,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는 것, 이 간단한 기준이야말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을 강하게 결집하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였다.


집단이든 국가든, 그것을 운영하는 원리 중에서 구성원들이 피부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법을 잘 지켜서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회는 늘 법과 제도의 빛과 그늘을 살피면서 잘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


고적유명(考績幽明)이라는 말이 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오는 이 말은, 조정에서 일정 기간 동안의 근무 상항을 점검하고 평가해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관리는 승진시키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강등시키거나 퇴출한다는 의미다.


말은 쉽지만 이것을 실행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몇몇 사람의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법과 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기도 힘들다. 정치인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은, 우리 대신 그것을 잘 정비해서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으로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정치를 이야깃거리로 올리지 않아야 좋은 사회가 아니던가. ‘고적유명’은 정치를 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 덕분에 국민들은 그것을 몰라도 평화롭게 살아가야 정상적인 나라다. 그렇게 돼야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사자성어


시우지화(時雨之化) ‘때에 맞춰 내리는 비는 만물을 살린다’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자연은 언제나 재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이 모자라면 가뭄으로, 지나치면 홍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적절한 비가 내려야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때에 맞게 내리는 비를 뜻하는 ‘시우(時雨)’야말로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말인가.


이 말을 인간 삶의 모든 부면에 적용해서 빗댈 수 있지만,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국민의 삶을 늘 살피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정치라면, 사람들은 때에 맞는 적절하고 고마운 비를 맞이하는 셈이다. 때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처럼 만물을 살리는 교화, 바로 시우지화(時雨之化)는 정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목표일 것이다.


[맹자] ‘진심장(상)’에서 맹자는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다섯 가지 방법을 말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것이었다. 공부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 진전이 없을 때 그의 막힌 곳을 뚫어서 변화시켜주는 것이 군자의 교육 방법이라고 했다. 농부가 열심히 밭을 갈고 씨를 뿌렸을 때 적절하게 비가 내려서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힘든 상황을 적절히 뚫어줌으로써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고적유명’도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고,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무망지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가슴에 품었던 앞날의 희망을 떠올린다. 그 희망을 모든 사람이 성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을 삶의 고비마다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얻는 작은 행복이 따지고 보면 나와 주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지만, 그 노력에 시우(時雨)가 내려 불현듯 다가온 것이기에 ‘무망지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작은 일에서 오는 무망지복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