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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외국계 증권사, 부정적 보고서로 주가 하락 유도한다?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실제로 주가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서 되갚는 투자기법이다. 공매도는 사실상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가 많이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계 증권사는 상장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투자의견을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지만, 최근 공매도를 노리고 고의로 평가절하한 의혹이 제기된다.

 

주식시장

 

지난 2월 14일 프랑스 투자은행(IB)인 크레디리요네(CLSA)증권은 파라다이스 목표주가에 대해 당시 주가의 반 토막인 1만원을 제시했다. CLSA의 보고서가 나온 후 2월 19일부터 2월 28일까지 파라다이스 주가는 13% 하락했다. 지난 1월 18일 독일 투자은행(IB)인 도이치뱅크는 셀트리온의 목표주가를 8만7200원으로 제시했다. 투자의견은 ‘매도(sell)’였다. 셀트리온의 주가는 당시 31만원이었다. 그러나 도이치뱅크는 당시 주가의 4분의 1 수준을 셀트리온 목표주가로 제시한 것이다.

 

도이치뱅크는 낮은 목표주가를 제시한 이유로 셀트리온의 연구개발(R&D) 비용 회계 처리를 문제 삼았다. 당해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R&D를 자산으로 처리해 영업이익률이 실제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이 글로벌 제약사들처럼 개발비 80%를 비용으로 처리하면 지난해 62%였던 영업이익률이 30% 중반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도이치뱅크는 “셀트리온 주가는 이익 상승 가능성을 고려해도 최근 너무 높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셀트리온은 지난해 매출 8289억원, 영업이익 5174억원을 달성해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가는 전날보다 9.8% 급락했다. 최근 1년 동안 셀트리온 주가가 그 정도로 급락한 적은 없었다. 외국계 증권사가 낸 보고서 하나가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에 따른 주가 충격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지난해 11월 27일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이클이 곧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목표주가는 29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후 이틀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5% 넘게 하락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2월과 10월 UBS·크레디리요네(CLSA)증권 등이 부정적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주가 급락을 경험했다.

 

 

외국계 증권사 매도 보고서

 


공매도 많은 종목 외국인 지분율도 높아

 
 

매수 일색인 국내 증권사 리포트에 비해 매도 의견도 과감히 내는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높은 편이다. 국내 증권사처럼 상장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투자의견을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리포트를 받아보기 쉽지 않아 외국계 증권사의 리포트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매도 물량을 대거 보유한 외국계 증권사가 부정적 보고서로 주가 하락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하기도 한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실제로 주가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서 되갚는 투자기법이다. 주가가 떨어질수록 더 많은 차익을 얻는 투자방식이다.

 

공매도를 하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식을 빌려야 한다. 개인은 증권사를 통해 주식을 빌리는 대주거래는 할 수 있지만 장외에서 별도 계약으로 주식을 빌리는 대차거래는 할 수 없다. 문제는 대주거래는 종목과 물량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막상 하려고 해도 복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렇게 계좌를 만들어 공매도를 해도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실상 공매도의 주체는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다.

 

실제로 공매도는 외국인 투자자와 관계가 깊다. 지난해 공매도 거래금액이 많은 종목을 살펴보면 대부분 외국인 지분율이 높았다. 정보기술(IT), 제약·바이오 업종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체 거래 중 공매도 거래가 5분의 1에 달하는 한국콜마(21%)는 외국인 보유 비중이 48%에 달한다. OCI와 카카오도 외국인 지분율이 각각 24%, 29%다.

 

한국거래소 공매도 종합포털에 따르면 1월 18일 도이치뱅크가 셀트리온의 매도 보고서를 낸 이튿날 이 회사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1311억원으로 전 거래일(756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올 들어 가장 많은 금액이다.

 

주가 하락을 틈타 외국인 투자비중도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 2월 13일까지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SK하이닉스를 가장 많이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2월 6일부터 28일까지 14거래일 중에서도 13거래일 동안 사들였다. 이들이 사들인 금액은 6824억원에 달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17일 CLSA가 ‘매도’ 투자의견과 목표주가 9만4000원을 제시했다. 이후 주가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현재는 7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저렴해진 SK하이닉스 주식을 꾸준히 매수해 지분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47%대였던 외국인 투자 비중은 2월 28일 49%로 2%포인트 증가했다.

 

 


매도 의견에 주가 무조건 하락하진 않아

 


물론 외국계 증권사가 매도 의견을 냈다고 해서 해당 종목의 주가가 무조건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CLSA가 삼성SDS에 대해 실적 대비 주가가 과도하게 비싸다며 목표주가를 10만원으로 제시했다. 당시 주가의 반 토막 수준이었다. 이 충격에 삼성SDS 주가는 하루 동안 9% 급락했다. 한 차례 쇼크를 겪은 후 삼성SDS 주가는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 속에 10월부터 상승 랠리를 이어가며 현재 23만원을 넘나들고 있다.

 

CLSA는 같은 달 엔씨소프트·LG전자 등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지만 현재 이들 주가는 상승세다. 특히 CLSA는 7월 LG전자에 대해 “주가를 반등시킬 의미 있는 촉매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목표주가를 기존 8만4000원에서 7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주가가 계속 상승하자 “12월 유기 발광다이오드(OLED) TV와 프리미엄 가전의 전망을 과소평가했다”며 목표주가를 11만5000원으로 상향조정했다. LG전자의 2월 28일 현재 주가는 9만9000원이다.

 

전문가들은 보고서에 좌우되기보다 투자자 스스로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군호 에프앤가이드 대표는 “국내 증권사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있고 증권사 전망이 맞느냐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결국 투자자가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여건) 등을 꼼꼼히 살피는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