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태고의 흔적 간직한 신비로운 사막의 아름다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척박한 땅이기에 인간에게 가장 훼손당하지 않은 곳이 있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땅... 보름달이 비추는 사막의 월야는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 환상적인 모습이다. [뉴욕타임스]와 [에스콰이어] 매거진에서 ‘베스트 앤 브라이티스트(Best and Brightest)’ 예술인으로 뽑혔던 사진작가 김미루가 화이트데저트를 여행하며 그녀의 눈에 들어온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막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막의 월야

 

▎달빛 아래 찍은 사진. 사막의 월야는 도시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즈음, 우리 주변을 배회하던 여우들에게도 음식을 공양해주었다. 야생동물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는 것만으로도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 것을 보고, 하마다는 몇 개의 닭뼈 조각을 집어 텐트에서 멀지 않은 모래 위에 던져 놓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양이만한 크기의 작은 여우가 소심하게 그 뼛조각에 접근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여우는 날쌔게 그것을 채어 달아났다. 그 여우는 도톰한 털로 덮여 있었으며 나무숲 같은 꼬리를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귀가 컸다. 그 큰 귀야말로 체온을 잘 발산시키며 사막에서도 시원하게 살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한다. 몇 초 후에 그 여우는 다시 왔는데, 이번에는 하마다가 뼛조각을 던지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다. 내가 여우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려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여우는 사람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하마다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닭뼈를 직접 물고 달아났다. 그 여우들은 관광가이드들과 이미 모종의 교감이 성립되어 있었다. 관광객들을 엔터테인하기 위해 먹이를 배분하는 데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마다는 작은 유리컵에 물을 담아, 텐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그 컵이 쓰러지지 않도록 모래 속에 박아놓았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여우도 물을 마셔야 해요. 여긴 마실 물이 전혀 없거든요.” 자연에 대한 배려는 문명에 덜 오염된 사람들의 기본상식이다.

 

낙타몰이 모함메드와 하마다가 불을 피우고 차를 달이는 동안, 나는 홀로 카메라장비를 챙겨 들고 월야의 사막정경을 흠상하기 위해 나 스스로의 벤처를 감행하기로 했다. 운 좋게도 화이트데저트에서의 첫 밤은 보름달이 공산에 가득 찬 때였다. 사막에서와 같이 오염된 공기가 완벽하게 제거된 구름 한 점 없는 곳에서의 보름달의 광채는 정말 도시거주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러한 수준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보름달의 광채가 백악의 바위들이 반사한 빛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바쳤다는 명월의 광경을 뛰어넘으리라!

 

(구) 화이트데저트



▎새벽에 떠오른 태양의 광원이 마치 거대한 세트장의 조명처럼 빛난다. 구 화이트데저트에서 찍었다.


 

사막의 월야에 느끼는 황홀경

 

플래시라이트를 때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이얗게 빛나는 백악바위들은 때로는 일직선으로 정렬되어 있다. 그 사이에 가득 찬, 이태백이 서리와 같다고 표현한 월광을 헤치고 걸어가고 있노라면 나는 새로운 행성을 걷고 있다는 착각에 곧 빠진다. 나는 이 느낌을 캡처해야겠다고 생각해 재빨리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자동셔터를 사용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이러한 랜드스케이프 속에서 홀로 누드로 보름달 월광을 맞으며 걷는 그 경험은 너무도 초연실적이고 유니크해서 그 기억의 영상은 아주 생생하게 다시 꾸고 또 꾸곤 하는 꿈의 장면처럼 지금까지도 나에게 남아 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잔상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카메라의 자동셔터가 찰칵거리기를 멈추었을 때, 나는 카메라 쪽으로 향한 시선을 그 반대편의 끝없이 펼쳐진 무애(無涯)의 공간으로 돌린다. 갑자기 멍해지면서 망아(忘我)의 무중력 상태가 된다. 정신이 몸을 이탈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뉴 화이트데저트

 

▎뉴 화이트데저트에는 원시 바다의 침전물이 굳어져 만들어진 새하얀 바위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갑자기 하마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재빨리 옷을 입고 텐트로 돌아갔다. 내가 그의 시야권에 들어오자 비로소 하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가 말했다. “절대 텐트를 이탈해 혼자 먼 데로 가지 마세요. 여러 번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정신을 잃었어요. 특히 밤에는 더 위험하죠. 뭔가 잘 모르지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게 있는 모양이에요.” 하마다의 말을 듣고 나는 깨닫는 바가 있었다. 사람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실성케 되는 것은 단지 단조로운 광경이나 거리의 왜곡된 인지 때문만은 아니다. 광대무변한 공간의 텅 빈 느낌이 인간의 프쉬케에 예기치 못하는 어떤 충격을 던지기 때문이다. 두 달 후에 내가 여행객들과 같이 이곳에 왔을 때, 한 여행객이 정신을 놓고 그를 찾는 사람들을 피해 멀리 도망가는 사태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여행객은 바위에 넘어지고 굴러서 상처를 입으면서도 계속 달아났다. 하마다가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숙면 후 눈을 떴을 때, 하마다는 내게 줄 인스턴트커피의 물을 끓이고 있었다.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고, 저 건너에 두 마리의 낙타를 역광으로 비췄다. 싱그러운 새벽의 햇살과 기운이 모든 사물에 실루엣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즉시 하마다에게 사진촬영 준비를 요청했고, 우선 낙타의 안장을 벗겨 달라고 했다. 아침햇살을 배경으로 하는 낙타 두 마리의 실루엣은 완벽에 가까운 대칭의 조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이 완벽한 광경을 놓칠 수가 없었다. 주저 없이 카메라를 설치했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버섯바위

 

▎버섯바위 옆의 작은 바위는 마치 병아리처럼 생겼다.
 

 

아름다운 새벽 햇빛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나는 극보수의 무슬림 사람 앞에서 누드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옷을 벗고 하마다에게 셔터버튼을 보여주었다. 셔터는 한 번 누르면 9장이 찍히도록 지정되어 있었다. 나는 하마다에게 계속 반복해서 누를 것을 요청했다. 내가 낙타를 향해 걸어갈 동안 그는 카메라의 파인더 구멍을 통해 보고 있었다. 내가 프레임 속에 들어가자 그는 “유 아 인(You’re in)!” 하고 소리쳤다. 나는 태양이 너무 높이 뜨기 전에 여러 포즈를 취했다.

 

낙타 옆에 앉아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두 낙타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직감적으로 내가 선택할 만한 충분한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겼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작업을 일단 멈추었다. 나는 옷을 입고 사진들을 검토했다. 그 많은 사진 중에 내가 두 낙타 사이를 걷고 있는 사진이 내가 의도했던 대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대칭의 조화를 구현하고 있었다. 진정 만족할 만한 작품을 얻은 것이다. 나는 카메라 장비를 거두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이 과정을 계속했다. 혹자는 내가 왜 이렇게 구차스러운 작업을 계속하는지, 돈이 들더라도 손발이 맞는 조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모든 위험성이 내재하는 순간들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금전적 문제를 떠나서도, 조수와 같이 다닌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여행은 혼자 다닐 때, 그 느낌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리고 내 삶을 작품에 예속시키고 싶질 않다. 나는 작품을 위해 전문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는 과정에서 작품을 낼 뿐이다. 나의 작품은 나의 삶 그 자체다. 나의 삶은 모험의 여정일 뿐이다.

 

백악기의 해양생물 화석


 ▎가이드가 고대 바다에 살았던 어패류 화석 조각을 집어 들고 있다. 이곳에는 백악기의 해양생물 화석들이 즐비하다.

 

아랍 여성의 의상에 숨겨진 ‘보호성의 질투’

 

하마다는 사진작업에 있어서 매우 좋은 조수였다. 그는 우리가 하는 작업을 낙타주인 모함메드가 구경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리가 촬영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를 멀리 보내 버렸다. 나는 하마다의 그러한 처사가 처음에는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마다는 모함메드에게 내가 자기의 여자친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논리인즉 이렇다. 내가 보통 관광객이라고 말하면 그는 언제고 다시 와서 구경하려 할 것이란다. 그러나 내가 누구의 여자친구이거나 지역사람의 부인이거나 하면, 와서 구경할 생각도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르단의 베두인들이나 이집트의 오아시스타운에 사는 남성들에게 내장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특유한 관념을 보여 준다. 여성은 완벽한 소유의 대상이다. 이것은 이슬람문화에서 비롯되는 가치일 것이다. 그 소유라는 관념은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완벽하게 구획되어 있다. 한 여성은 한 남성에게 전적으로 소유되는 것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아랍말에 ‘기이라(gheera)’라는 단어가 있다. 번역하면 ‘보호성의 질투(protective jealousy)’ 혹은 ‘정의로운 질투(justified jealousy)’라는 뜻인데, 이러한 관념은 이슬람 사회의 의상코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바하리야의 큰 마을 바위티(Bawiti)에서, 요르단이나 기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하게 커버된 여인들을 목도했다. 이 여인들은 까만 니깝을 전신에 두르고도 그 위에 새까만 망사천을 덮었다. 그들은 베일을 통해서만 세상을 본다. 그리고 장갑과 신발로 살을 다 가렸다. 그러니까 단 1밀리미터도 외부로 노출되는 살결이 없는 것이다.

 

별 모양의 까만 돌

 

▎별 모양의 까만 돌. 사막이 바닷속에 있을 때 수중 화산의 폭발로 생겨난 광물이다.
 

 

이와 같이 토착민 여인들이 외부에서 입어야만 하는 의상의 관념을 생각할 때, 내가 사막에서 하는 행동은 너무도 적합치 못한 것이다. 적합치 못하다는 말조차 너무도 관대한 표현일 것이다. 하여튼 고맙게도 하마다나 모함메드나 나에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의 계약이 요구한 대로 성실하게 의무를 수행했다.

 

우리가 구(舊) 화이트데저트로부터 신(新) 화이트데저트로 옮겨감에 따라 나를 이집트로 오게 만들었던 사진들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광경들이 내 눈앞에 현실로서 펼쳐졌다. 암석들의 형상이 어찌나 찬란하게 빛나는 백색이었던지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조차도 투명한 얼음의 푸른색이었다. 내가 인터넷상으로 보았던, 백악의 암석들이 백설더미같이 보였던 그 사진들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 광경은 그보다도 더 순결했다. 나는 경외감에 멍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창조한 거대한 조각품들로 점철된 신비로운 대지의 오라(aura)에 삼켜진 채 나는 망연하게 서 있었다.

 

백악기의 지구는 해수면이 높았다.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은 바닷속이었다. 그때의 해수 온도는 오늘의 해수에 비해 평균 17도나 높았다. 온도가 높았다는 것은 생명활동이 그만큼 왕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석회질의 분비물을 내는 해양생물이 엄청 많았다는 뜻이다. 이 대양이 말라버리고 해저가 노출됨에 따라(해령의 융기현상이 있었다) 이곳은 사막화되었고, 탄산칼슘이 퇴적하여 형성된 백악의 바위들은 수천만 년에 걸쳐 자연의 침식작용에 복속되어 초현실주의적인 형상들을 지어냈다. 어떤 것들은 3층짜리 건물 높이에 달했다.

 

바위들의 형상은 대체적으로 버섯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영어로는 이것들을 ‘벤티팩트(ventifact)’라고 부른다. 사막의 바람이 불 때 아랫도리를 모래 섞인 바람이 치기 때문에 위보다는 아랫도리에 침식이 가속화된다. 지역민들은 이 거대바위 형상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 방식은 대체로 동물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다. 토끼바위, 닭바위, 낙타바위, 오리바위 등등. 인간은 비생명적 물체에 생명의 이름을 붙이는 습성이 본능화되어 있는데, 그것은 실상 비생명적 물체도 본질적으로는 생명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생명이 없는 듯이 보이는 바위도 움직이고 있고 형태를 바꾼다. 그들의 시간 감각이 너무 완만하여 우리에게 인지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공룡비늘처럼 생긴 바위밭

 

▎공룡비늘처럼 생긴 바위밭.


고대의 심해가 응축된 백악바위

 

백악바위 형상을 관광하고 난 후, 나는 우연히 내 발 아래를 내려보았을 때 내가 여태까지 보았던 백악형상만이 지질학적 변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백설같이 흰 방해석(CaCO3)의 퇴적 위에 뿌려진 수없이 많은 다양한 작은 까만 형상들이 있었다. 로컬들은 그것을 ‘사막장미’라고 부르는데, 입체적인 별 모양을 한 까만 돌이었다. 어떤 것은 미니 아령같이 생겼고, 어떤 것은 8각형이다. 또 어떤 것은 아이스크림을 담는 완벽한 콘 모양이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게 주조된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자연의 산물이라 믿기 어려웠다.

 

이 물체들의 신비는 나중에 내가 이들이 철을 함유한 미네랄의 소결절(小結節: 대부분이 적철광으로 알려진 산화철로 구성되어 있다)이라는 것, 그리고 이 결절들은 이 사막 지역이 바닷속에 있을 때 수중 화산폭발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책에서 읽고 알았을 때 궁금증이 풀렸다. 또한 수없이 많은 조개류, 갑각류 동물의 화석, 암모나이트 화석, 상어이빨 등등 화석의 잔재들을 발견했다. 나는 백악의 슬로우프 위에 서서 방대하게 펼쳐지는 바다의 장관을 상상해 보았다. 인간이 생겨나기 이미 수억 년 전에 이곳은 지구를 지배한 수많은 해양생물, 그 생명의 만다라로 가득 차 있었다. 백악기는 중생대의 마지막 시기이며 공룡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그 시기는 1억4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에 걸친다. 그 시기의 종료는 K-T대멸절이라는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이 지구는 곳곳에 40억 년의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지구는 2억 년마다 빙하기가 찾아왔다. 진화는 미덕(美德)과 무관하다. 인간은 300만 년을 살았지만 공룡은 지구상에 1억2500만 년 동안 살았다. 인간은 지금 신이 되려고 하고 있다. 자연에 위장술을 발휘하는 생물들은 많다. 그러나 자기를 속이지는 않는다. 자신을 속이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인간의 운명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모든 것이 순간에 결정된다. 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떠올렸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자연이 만든 이 작은 예술품들을 흠상하며 몇 개 집고 있는 동안 의식은 나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자란 신촌 봉원동에는 봉원사 뒷산이 퍽이나 무성했다. 나는 그곳에서 홀로 작은 풀이나 꽃, 열매, 돌멩이, 곤충들을 살피느라 모든 것을 잊고 여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부모님이 자연에 열중하고 있는 나를 찾으러 오시곤 했다.

 

내가 서 있는 사막에서 나는 좌선의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 작열하는 백악바위에 둘러싸여 시간·공간·소이연의 감각을 상실한 채 현재적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모래에 깔린 수천 개의 작은 예술품을 바라보는 그 행위에만 나의 모든 의식이 집중되면서 무념상태로 빠져들었다. 내 등이 태양에 그슬려 너무 따갑게 느꼈을 때 비로소 나는 선정(禪定)을 끝냈다. 그리고 사진작품을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깐 그늘에서 쉬었다. 다음 장소는 평평하고 막힌 데가 없었기 때문에 약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점, 하마다는 패닉에 사로잡혀 나에게 소리치면서 바닥에 엎드리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내 옷을 가지고 달려왔다. 나는 신속히 옷을 입었다. 곧 몇 대의 트럭이 관광객을 싣고 지나갔다. 운전사들은 지역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동하면서 하마다의 지시를 잘 지켰다. 하마다와 계약할 때 그가 이메일에서 언급한 ‘비그 프러블럼(big problem)’이라는 말의 범위를 난 잘 이해하지 못 했다. 지역민이 자기가 누드의 이방인과 같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동네사람들의 가십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될까? 그의 부인이 한동안 골 나 있을까? 종교적 계율을 어긴 벌을 받을까? 음란의 죄목으로 처벌을 받을까? 결국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제일 좋은 것이다.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 아인 엘 세르우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 아인 엘 세르우. 사람이 지날 때만 샘물이 솟는다는 전설이 깃들어 ‘매직 스프링’이란 이름이 붙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솟아나는 신비의 샘

 

사진작업은 일몰 때까지 계속됐다. 유감스럽게도 낙타는 자기 동네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낙타는 지쳤을 것이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700달러가 넘는 대금을 지불했다. 낙타를 2일 동안 대여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시점에서 더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었다. 원칙으로 말하면 나는 낙타를 24시간밖에 쓰지 못 한 것이다. 하루 더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있었다. 나는 우선 정말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기실 대부분의 사진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아침햇살 같은 그런 싱그러움을 만날 길이 없었다. 낙타를 떠나보내는 것이 몹시 울적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작품사진을 찍은 탓에 나의 창조적 에너지도 고갈되어 있었다. 다음날은 작업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아시스 주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정든 낙타와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이미 중천에 있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하마다는 나를 보다 다양한 이색적 장면으로 안내했다. 아주 커다랗고 회색인 바위더미들이 꼭 추락한 유에프오(비행접시)들처럼 보이는 그런 곳에도 데려갔고, 깊게 끌질을 한 것 같은 바위조각들이 마치 공룡 표면적의 비늘같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필드에도 데려갔다. 그리고는 사막 한가운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매우 특별한 작은 샘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아인 엘 세르우(Ain el Serw)’라고 하는 곳인데 보통 ‘매직 스프링(Magic Spring)’이라고 부른다. 그곳은 정말 만화에서나 보는 오아시스의 전형처럼 보였다. 종려나무와 큰 풀들이 자라는 언덕이 있다. 그 언덕 위에서 정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물이 분출되는 샘 아래로 여러 개의 작은 욕조처럼 생긴 풀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계단식으로 연결되어 언덕의 바닥에까지 내려온다.

 

그 물은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돌로 만든 풀의 내면이 조류로 덮여 있는데 그 조류로 인하여 물이 까맣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 물은 더러운 물이 아니었다. 아주 깨끗한 고귀한 물이었다. 하마다는 나 보고 그 안에 몸을 담그라고 권유했다. “깨끗한 물이요. 절대 샴푸는 사용하지 마시오.” 좋은 충고였다. 하마다가 종려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나는 계단 풀 중에서 제일 상위의 풀에 들어가 앉았다. 신선한 샘물의 감촉이 전신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 욕조에서 광막하게 펼쳐지는 사막의 파노라마를 관망하는 사치는 지상의 열락이라 말해야 할 것 같다. 위대한 샘물이었다!

 

이 특별한 샘을 ‘매직 스프링’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특별한 전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에 의하면 이 샘은 사람들이 접근할 때만 물을 낸다고 믿고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는 이 샘은 물을 거둔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이 샘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생명체라고 믿는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솟아오르는 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원한 신비라 말해야 한다.

 

신비의 샘가에서 먹는 점심은 정말 맛있었다. 하마다가 준비한 샐러드는 매우 특별했다. 큰 가지를 통째로 호일에 싸서 불에 구운 다음, 그 익은 가지를 껍질만 남기고 다 후벼 파내어 마늘과 레몬과 올리브오일과 자극적인 푸른 고추와 함께 섞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먹은 석류는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보통 석류라고 하면 신맛만 연상이 된다. 그러나 이 석류는 내가 평생 맛본 적이 없는 오묘한 단맛이었다. 이 맛있고 탐스러운 과일이 고대 이집트에서 풍요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은 않다. 그 기록은 기원전 1600년경까지 올라간다. 석류는 파라오의 정원을 장식하는 데 필수였다.

 

점심을 먹고 그늘에서 한참을 쉰 후에 우리는 밤을 지내게 될 다음 캠핑지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하마다는 나를 관광객들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특별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엘 아가바트(el Agabat)’라고 이름 붙인 계곡이었는데 나는 그곳의 높은 지대에서 일몰을 쳐다보았다. 차에서 내려 순결한 모래언덕을 밟았을 때, 인간의 발자국이나 자동차의 바퀴자국이 전혀 없는, 짙은 태고의 선율을 그리는 모래물결이 선명하게 나의 시선을 자극했다. 그곳에서 아가바트 계곡의 파노라마를 훑어보는 순간,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순결한 모래언덕의 아름다움은 사막의 핵심이다. 그 모래언덕이 유황색 절벽이 깎아지르고 있는 거대한 사암의 형상과 또 하부바닥으로 흘러내리는 하이얀 백악의 기슭과 조화되어 절대적으로 장쾌한 광경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그 장쾌함은 신 화이트데저트의 광경보다 더 스펙타클했다. 더구나 일몰의 색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후회 섞인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왜 일찍 이곳을 알지 못 했던가? 이곳이야말로 나의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인데!”


 

아가바트 샌드 듄

 

▎아가바트 샌드 듄.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모래 바다와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모래바다

 

그러나 이미 낙타도 가버렸다. 지금 사진을 열심히 찍어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엘 아가바트에 앉아 있는 하마다의 스냅샷을 몇 장 찍어 주었다. 하마다는 그것을 온라인상에 관광안내인 사진으로 쓰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다시 온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숙고하는 데 나의 사유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내가 화이트데저트에서 찍은 작품사진에 관해 가장 불만스러웠던 건 모티프로 쓴 낙타의 색깔이었다. 나는 하마다에게 흰 색깔의 낙타를 요청했다. 그런데 그는 그 지역에서는 흰 낙타를 구경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집트로 떠나기 전에 나눈 그와의 이메일 교신에서, “정 흰색 낙타를 구할 길이 없다면, 당신의 친구에게 가장 색깔이 옅은 놈으로 데려오라고 하세요. 모래색깔 정도라도 되는 놈, 그리고 코트가 부드럽고 단색인 놈으로 골라주세요. 등에 꺼먼 털이 많이 난 혹을 가진 놈, 몸에 무슨 표지가 있는 놈, 그리고 입술이 늙은 낙타처럼 길게 늘어진 놈은 싫단 말예요.”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모함메드가 데려온 낙타 두 마리는 짙은 브라운에다가 초라하고 작았다. 그들은 나의 화이트데저트의 이상적 이미지와 들어맞질 않았다. 나는 팀북투에서 보았던 털이 짧으면서 하얗고 몸집이 거대한 단봉낙타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스펙타클한 광경에 시각적으로 엄청 강렬한 이미지를 창출해낼 수 있는 낙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흰 백악바위를 배경으로 백악과 같이 흰 낙타, 그리고 강렬한 모래언덕 물결은 시각적으로 위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리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러한 관념에 매료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은 모든 창조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의 공통된 벽(癖)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디테일에 매달린다. 그것은 당시 나의 집요한 벽이었다.

 

아가바트 계곡의 일몰을 아무 작업 없이 쳐다만 보고 있는 내게 후회의 집념들이 몰아쳤다. 나는 다음날 아침 하마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카이로로 날아갔다. 카이로 시내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기에 편리한 곳에 아주 값싼 호텔을 사흘밤 예약해 놓았다. 하룻밤을 그 호텔에서 지내고 난 후, 나는 예약을 취소하고 내가 예약할 수 있는 최고급의 5성급 호텔로 옮겼다. 카이로라는 도시가 너무 혼잡스러웠고 싼 호텔이 위치한 지역이 타히르 광장 주변의 중심가이긴 했지만 좀 안전치 못 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해 초에 대규모 민중데모로 축출된 전 대통령 무바라크의 재판을 둘러싼 항의데모가 또 벌어질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나는 나일강변의 아름다운 호텔의 옥상에서 수영장과 스파의 자쿠지(jacuzzi) 목욕을 즐기는 사치를 즐기고 있었지만, 흰 낙타와 엘 아가바트 계곡의 오염되지 않은 선경(仙境)은 가물가물하면서도 내 의식을 떠나지 않았다. 말을 타고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위용을 보았다. 이집트 고고학박물관의 막대한 양의 보물들이 옛날 나무장 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 모든 여정이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이 보물을 캐러 떠나는 여로의 장면들과도 같았다. 나의 보물은 어디 있는가? 나는 결국 아무래도 또다시 이집트에 오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막에 다시 오게 되리라! 흰 낙타, 그 나의 보물을 다시 보기 위하여 나는 그 신비로운 사막으로 다시 오게 되리라!

 

ⓒ 김미루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