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 평양을 방문하면 소득 1000달러 수준인 이 사회에서 구매할 것은 별로 없었다. 일행들은 개성인삼주를 비롯해 들쭉술 등 주류와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그림과 공예품을 정신없이 구매했다. 단연 인기 품목은 술이었다.
하지만 술을 서울까지 들고 가는 것이 큰 문제였다. 깨지지 않게 포장해도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 즈음되면 병마개가 정확하게 압착되지 않아 액체가 미세하게 흘러나오면서 온 가방이 술 냄새로 진동했다. 핵과 첨단미사일은 개발하지만 술병 마개가 정확하게 제작되지 않아 술이 샌 것이다.
과거 평양 방문 당시 북한에서 뇌물의 범위에 대해 안내하던 민족경제연합회 참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김일성 수령님께서 ‘술과 담배는 함께 나눠서 즐겨도 좋다’고 언급하셨다”고 대답했다.
북한에서 민원이나 아쉬운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물었다. “동료에게 일을 부탁하거나 윗선에 인사를 청탁할 일이 생기면 퇴근 후 상대방의 집에 찾아가 싸들고 간 술과 담배를 함께 마시고 피우며 사정을 털어놓고 해결방안을 찾는다”고 대답했다.
북한에서는 거의 모든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여성들은 거의 피지 않음에 따라 인구대비 흡연율은 대략 50%에 육박한다. 2005년 평양에서 북측과 회의를 했으나 회의 개최한 시간 만에 실내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에 손을 들고 말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계속 연기를 뿜어대니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필자에게는 공산주의의 폭정보다 무서운 지옥이었다.
특별히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북한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먹거리가 제한적이라 술과 담배를 음식으로 이해하고 ‘영웅호걸은 술과 담배를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가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술과 담배도 여성들에게는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특히 여성이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교화소에 가서 반성문을 써야 한다. 여성들에게는 철저히 통제되는 반면, 유흥거리가 극도로 제한됨에 따라 술과 담배는 북한 남성들에게 필수적인 놀이문화다.
와인 애호가 김정일, ‘맥주 덕후’ 김정은
2004년 평양 방문 당시 경험이다. 첫날 저녁에는 보통 환영만찬이 열린다. 약을 복용하는 관계로 금주 상황이어서 참석자들의 건배 구호에 맞춰 마시는 시늉만 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약 복용 사실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지만 옆자리 앉은 담당 참사가 왜 안마시냐며 성화가 보통이 아니었다.
특히 계속 잔을 비우지 않으니 “교수 선생은 우리와 안 사귀자는 것”이라고 면박을 줘 결국 2잔을 마시고야 말았다. 북측 참사는 “교수 선생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공화국에 와서 가슴을 열어 놓지 않는 것으로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며 “이래가지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통일과업을 성취하겠냐?”고 노골적으로 핀잔을 줬다.
북한 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교제와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구면인 참사가 귀띔을 해주었다. 완벽한 사회통제 체제 하에서 술을 마시는 자리는 개인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군도]와 같은 환경에서 술은 일상의 일탈을 추구하는 매우 요긴한 수단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평안북도 소재 룡문술공장을 현지 지도했다. 김 위원장이 술 작업반에 흐름선(컨베이어 시스템)을 타고 쉼 없이 생산돼 나오는 각종 술을 보고 “병 배열과 세척, 술 주입과 병마개 봉합 등 모든 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됐다”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는 보도였다.
김정은은 “공장에서 첨단설비들을 잘 갖추어놓고 물 여과도 과학기술적으로 하고 있다. 사시장철 변함이 없는 천연샘물을 잘 여과해 술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이미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생산공정의 자동화, 무인화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제품의 질을 더욱 높여 룡문술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주로 만들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술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증거이며 실제로도 맥주를 매우 즐긴다고 한다. 2013년 양조장을 갖춘 독일 맥줏집 비어가르텐을 평양에 열어달라고 독일 맥주회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북한산 맥주와 남한산 맥주를 비교하며 ‘남조선 맥주는 정말 맛이 없다’라는 소감을 이야기해 ‘맥주 덕후’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이가 젊기도 하지만 김 위원장이 체질적으로 술이 잘 받는 체질인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안 내력인 것 같다. 판문점 정상회담 만찬 당시 김 위원장의 취기 어린 얼굴이 화면에 비친 것으로 판단할 때, 주량은 중상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김정일이 가장 좋아했던 술은 1980년 프랑스 보르도산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라는 와인이었다. 병당 560만원 내외다.
김정일은 생전에 노회한 고위 관료들의 면종복배 행태를 시험하기 위해 양주 등 독한 술을 마시는 심야 술파티를 자주 벌였다. 김정일이 젊을 때는 같이 양주를 마셨으나 건강이 악화된 이후로는 본인은 양주 모양의 보리차를 마시고 고위층들은 독한 양주를 마시게 해 진짜 충성 맹세를 강요했다.
북한의 주류는 식료품공장이나 음료 및 주류공장에서 생산하며 당과 기관에서 생산부터 유통 단계까지 관리하고 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술의 대부분은 특정기념일 배급용이나 수익창출을 위한 외국인 관광객용으로 업소나 상점에서 제한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은 돈이 있다고 해서 술을 상점에서 무제한 구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술 구매는 개인당 제한이 있고 행사용 등으로만 한정된다.
북한에서는 어떤 주종이 인기가 있을까? 북한에서도 남한과 유사하게 맥주·청주·과실주 등의 발효주와 소주와 위스키 등의 증류주 및 기타 주류까지 존재하고 있다. 고품질의 주류 배급은 당 간부 연회 및 행사용이 대부분이고, 인민을 대상으로 한 배급은 제한적이다.
인민들의 집에서 제조된 밀주가 장마당에서 은밀하게 유통되기도 한다. 술에 대한 인식은 도수가 높을수록 프리미엄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접대나 선물용으로 위스키 등이 많이 사용된다.
맥주는 대동강맥주 등 유럽식의 고도 알코올 맥주를 선호하며 주로 평양의 고위 간부 및 외국인 관광객용으로 소비된다. 북한의 맥주는 10여 종류가 있으며, 총 생산규모는 연간 15만㎘로 추정된다.
북한의 맥주는 독일식 라거 맥주로 알코올 도수가 5.5%로 높은 편이다. 북한산 맥아와 호프를 사용하고, 추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옥수수 함량이 높아진다. 맥주공장 설비는 체코산을 주로 도입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생산한바 있는 평양맥주는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였다. 최근에는 대동강맥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대동강맥주는 품질 향상을 위해 2000년 영국 어셔 양조장을 인수한 대동강맥주공장에서 2002년부터 생산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은 7만㎘이고 생산 제품수는 7종이다.
대동강맥주는 영국에서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이며 대동강맥주를 맛보는 관광 상품까지 나왔다고 북한 당국에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동강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5∼5.7% 이며 용량은 병맥주가 500㎖와 640㎖이며 생맥주는 50ℓ이다. 원료는 물과 북한산 맥아 및 호프다. ISO 9001 품질관리체계 인증 및 HACCP 식품안전관리체계 방식의 인증을 거쳤다고 선전한다.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된 평양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12%이며 평양맥주공장에서 보리 원액과 호프를 원료로 제조하고 용량은 640㎖이며 생맥주도 생산된다. 1980년부터 생산한 룡성맥주는 조선평양룡성맥주공장에서 보리, 호프를 원료로 알코올 도수 4.5%의 640㎖ 용량으로 생산한다.
보관기간은 3개월이며 최고급 맥주로 평가된다. 이외에 조선평양낙원공장에서 생산하는 알코올 도수 4%, 용량 350㎖의 금강맥주, 나진음료공장에서 생산하는 알코올 도수 4.5%, 500㎖의 삼각맥주 등이 있다.
남자가 마시면 신선, 여자가 마시면 선녀
북한의 소주는 알코올 도수 25%의 고도 증류식이 대부분이다. 평양소주공장에서 생산하는 평양소주가 가장 유명하고, 원료로 옥수수와 쌀 및 기타 잡곡을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거칠고 알코올 향이 강하다. 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벌꿀을 2%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용량은 360㎖이며 알코올 도수 21%, 23% 및 25%의 세 가지 종류가 생산된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건배주로서 사용됐다는 평양주는 평양대동강식료공장에서 500㎖와 750㎖ 용량을 생산되며 알코올 도수 25%와 30%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옥수수와 쌀이 주원료이며 ‘12월 15일 품질 메달’을 수상한바 있다고 선전한다.
삼천무역회사에서 생산하는 대동강소주는 300㎖ 용량을 생산되며 알코올 도수 25%와 30%의 두 종류가 있으며 희석식 방식으로 제조된다. 개성인삼술공장에서 생산되는 개성소주는 옥수수와 알코올 및 샘물을 원료로 사용하며 330㎖ 용량으로 알코올 도수 25%다.
개성송도식료 공장의 송악소주는 옥수수와 도토리를 원료로 500㎖ 용량으로 생산되며 알코올 도수는 25%이고 천연샘물을 배합해 향이 좋으며 맛이 순해 수차례의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고 선전한다. 알코올 도수는 30%로 높은 편에 속하지만 증류식으로 제조되는 술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취할 수 있고 숙취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소주 제품은 식료공장에서 주로 생산되며, 특정기념일 배급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소주는 대다수의 인민이 선호하지만 배급은 제한적이라 인민들이 직접 밀주를 제조해 소비한다.
이외에 지역 천연원료를 사용한 과실 특산주가 많다. 과실주는 들쭉술 등 지방의 특산품으로 만든 술로 주로 고위간부 및 외국인 관광객용으로 사용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건배주로 사용된 들쭉술이나, 개성고려인삼술, 강계산머루술 등 여러 종류의 지역특산주가 존재한다.
개성고려인삼공장의 개성고려인삼술은 알코올 도수 30%이며 주종이 리큐르다. 인삼, 인삼엑기스, 쌀 및 옥수수를 원료로 650㎖ 용량이다. 독일, 불가리아 등 국제상품전람회 및 품평회에서 7회 금메달의 영예를 얻었다고 선전한다. 1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개성고려인삼을 엄선해 개성 고유의 전통술 제조법으로 특별하게 제작한 술이다.
식욕을 증진시키고 피로를 빨리 회복시킬 뿐 아니라 원기를 보충해주는 건강술이라고 표기돼있다. 장뇌산삼술은 5년~10년근 장뇌산삼으로 만든 건강술로 각종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에 효과적인 약술로 유명하지만 알코올 도수는 40%로 매우 높다. 영국·러시아·독일 등 술 품평회에서 최고급 술로 평가를 받는다고 자랑한다.
백두산 자락인 양강도 혜산시의 혜산들쭉가공공장에서 생산하는 백두산들쭉술은 알코올 도수가 40%이며 720㎖ 용량이다. 주종 역시 리큐르이며 들쭉액과 과당 및 보리를 원료로 생산하며 6·15 정상회담 건배주로 유명해졌다. 백두산 일대에서 수확되는 열매인 들쭉으로 생산된다.
수확량이 많지 않고 채취도 어렵기 때문에 그 희소가치가 높다. 페놀이라는 식물 화학물질이 포함돼 시력을 높이고 피를 맑게 하며 체중 조절, 기억력 개선 등 남자가 마시면 신선이 되고 여자가 마시면 선녀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한 내에서는 약술로 통하는 술이라고 선전한다.
자강도 강계시 강계포도술공장에서 생산하는 인풍술은 포도브랜디, 머루즙 및 과당을 원료로 제조되며 알코올 도수가 40%이며 720㎖ 용량이다. 주종은 강계 아미산 지하 150m에서 나오는 암반수를 원료를 사용한다고 표기되어 있다.
같은 강계포도술 공장에서 생산되는 백로술은 알코올 도수 40%이며 720㎖ 용량이다. 고량주·물·포도·야생배 및 과당이 원료이며 주로 칵테일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강계산포도술공장에서 생산되는 강계산 머루술은 주종이 과실주이며 알코올 도수 16%이며 500㎖ 용량이다. 산머루와 과당이 원료이며 자연 산머루의 향이 강한 명주로 알려져 있다.
1월 1일은 설날 아닌 술날?
다양한 주류 제조공장이 있고 음주에 대해 관대한 북한에서는 주민들은 얼마나 술을 마실까? 우선 북한의 성인인구(20~59세) 비율은 2500만 명 중 5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술을 마시는 20세 이상의 성인남자 비율은 20% 내외다. 맥주 생산량의 경우 남한은 연간 280만㎘인데 북한은 15만 ㎘ 내외로 추정되기 때문에 시장의 규모는 차이가 있다.
맥주 생산량으로 봤을 때 규모를 5%로 가정하면 전체 소비총량은 단순 계산으로 우리나라의 5% 정도 소비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수치는 공장 제조 기준이라 가정에서 만드는 밀주를 고려하면 북한의 음용량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의정부 성모병원이 국세청 자료를 기준으로 추정한 15세 이상 한국인 1인당 순수 알코올 소비량은 9.14ℓ였다. 이는 21도짜리 소주로 1년에 121병, 5도짜리 500㎖ 대용량 캔맥주 366캔 수준이다.
북한에서는 언제 어디서 술을 마실까? 북한의 술 문화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술의 종류, 음주 파트너, 음주 장소, 음주 목적 등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층 주민들은 술 음용 빈도가 잦고 주로 이웃 주민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는다.
술의 품질보다는 양을 우선하고 편하게 술자리를 즐기는 성향이 있다. 하층 주민들은 술 구매가 어렵기 때문에 주로 집에서 제조한 밀주나 장마당에서 구매한 술을 친구들이나 이웃들과 집이나 장마당 혹은 길모퉁이 등에서 마신다. 술을 마시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싸움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반대로 당 간부 등 고위층 계층들은 상대적으로 음주 빈도가 적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술자리를 가진다. 양보다는 술의 질을 우선하고 술자리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실수할 경우 잃을 것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상류계층들은 맥주나 양주 등을 집이나 유흥업소에서 마신다. 외화식당에서는 맥주 한 병에 제일 싼 것이 2달러 수준이다. 1달러에 쌀 2kg을 살 수 있는 북한에서 외화 사용 식당이나 평양시 중심가 유명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외화벌이 계층이나 보위부, 보안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상점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하는 술은 관혼상제용으로 나오는 몇 병에 불과하다. 관혼상제용이란 사람이 죽거나 결혼을 할 때 세대별로 국가에서 배정한 술을 말한다. 배급양은 세대 당 500ℓ짜리 5~10병 수준이다.
환갑이나 회갑 결혼식이 다가오면 밀주 담그는 집에 미리 은밀히 주문한다. 밀주가 성행함에 따라 제조 기법에도 노하우가 축적돼있다. 밀주의 경우 불을 붙여봐서 파란불이 빨리 꺼지지 않을 정도여야 알코올 도수가 25~28% 이상의 술이 된다.
당국에서 불시에 주기적으로 단속을 실시한다. 한낮에 굴뚝에 연기가 나면 술을 뽑는다고 판단하고 보안원들이 급습해서 술항아리나 술 뽑는 기계 등을 회수해가거나 벌금을 물리기도 한다.
외무성이나 무역상 및 무역업자 등 해외 근무자들은 귀국하면서 선물로 가져온 술이나 직접 휴대한 양주 등을 마신다. 외국에서 구매한 술이 바닥이 나면 배급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에 따르면 새해를 앞두고 직장별로 ‘명절공급’을 받는다. 외무성의 직원들은 돼지고기 1kg, 소주 2병, 설탕 1kg, 콩기름 3ℓ를 받았다고 한다.
12월 31일에는 직장 부서별로 망년회를 하는데 외부 장소가 여의치 않아 직장 상사 집에서 한다. 설날 연휴는 1∼2일 이틀이라 31일부터 1월 2일 저녁까지 사흘간은 남자들이 술에 절어 있으니 ‘설날’이 아니라 ‘술날’이라고 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다.
12월 31일부터 1월 3일까지는 ‘특별경비주간’으로 선포하고 각 기관별로 근무조를 정하며 주의사항을 환기시킨다. 설날에 술을 많이 마시고 길거리에서 자다가 얼어 죽거나, 사무실이 추워 술을 마신 채 난로나 연탄불을 켜놓고 자다가 가스 중독이나 화재로 죽는 일이 빈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평양은 맥주, 외곽 서민은 밀주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의 2017년 국민총소득(GNI)는 36조6000억원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46만원이다. 남한은 GNI는 1730조4000억원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3363만원으로 23배 차이가 난다. 남한의 1980년 GNI는 39조원이었다. 따라서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은 남한의 ‘70년대 후반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1970년대 전후로 남한의 주류 음용실태는 크게 소주 성장기, 맥주 대중화기, 다주종 성장기로 구분된다. 1980~90년대는 맥주 대중화 시기로 소득이 증가하고 접대 및 선물 문화가 확산되면서 위스키와 맥주 소비가 증가했다. 생맥주의 보급이 증가하고 맥주 소비량이 증가했고 폭탄주 문화도 유행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모든 주종에서 변화가 생겼다. 소주의 경우 지속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면서 2006년에는 20% 밑으로 내려갔다. 2015년에는 알코올 도수 13~14% 제품의 이른바 과일소주 제품이 유행했다. 현재 소주 시장은 지속적으로 저도화하는 시장과 기존의 고도수의 소주로 나뉘고 있다. 맥주도 흑맥주와 밀맥주가 출시됐고, 각 제조사들은 제품 종류를 늘려 시장의 변화를 유도했다. 서민의 술이었던 탁주는 웰빙 문화와 일본 수출에 힘입어 2010년에 판매가 급증했으나 2011년 이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북한의 주류시장은 남한의 1970~80년대 수준으로 평가된다. 억압된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빈번히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북한의 주류 시장은 훨씬 커질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인기가 많은 주류는 대동강맥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적인 수준에 버금가는 맥주를 만들라는 지시로 시작됐다.
북한 당국은 2000년 영국의 어셔 트로브리지 양조회사로부터 150만 파운드에 공장 설비를 구매해서 평양 인근에 대동강맥주공장을 설립했다. 강계시 주류공장에서 일했던 이애란씨에 의하면 대동강맥주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7만㎘이며 영국산 설비에 독일 양조기술을 도입해 생산되며 평양에 생맥주 집이나 당 간부의 상납용 및 외국인 판매용으로 사용된다.
평양에는 표면상으론 맥주가 유행하지만 평양 외 지역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비평양 지역은 아직 맥주의 보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의 서민은 밀주를 마시고 있다.
북한은 술의 제조단계부터 유통까지 당 및 기관에서 관리와 운영을 하고 있다. 제조와 유통이 분리된 남한과 달리 북한은 당과 기관을 통해 제조, 배급 또는 판매된다. 남한은 제조에서 소비까지 제조사→주류도매상→소매상 3단계인 반면 북한은 상업성→도매관리국중앙도매소→도출하도매소→지구도매소→시·군 상업관리소→상점 등 7단계 이상 거처야 소비가 가능하다.
이로 인해 북한의 주류 가격구조는 남한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한은 제조원가에 이윤 및 교육세, 주세 및 부가세 등 세금을 더해 계산하지만, 북한은 원가에 유통 단계별로 이윤이 부과돼 당과 기관에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 달러 환산 시 주류 판매 가격은 남한보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실제 북한 주민들의 월급을 고려하면 남한의 몇 배 가격일 정도로 비싸다.
북한의 주류 관련 법규는 남한과 매우 다르다. 남한은 주세법에 근거해 국세청에서 술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반면 북한은 별도의 주세법은 없고, 품질관리법과 규격법 등 제품 자체의 품질관리 측면에서 감독을 받는다. 품질 관련 법규는 중앙규격지도기관과 비상설규격제정위원회에서 관리되고 있다.
국내 쌀로 북한 술을 만든다면?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2017년 61.8㎏으로 2000년 93.6㎏ 대비, 약 34% 급감하면서, 매년 증가하는 정부 양곡 보관비용이 2017년에는 약 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쌀 재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쌀 소비 확대책의 하나로 주세를 감면하는 내용의 주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금 북한에서는 쌀이 굉장히 부족한 데도 쌀 함량이 30%, 50%, 80%, 100%인 대동강맥주를 보리와 섞어 제조하고, 쌀·찹쌀·옥수수를 원료로 평양 소주도 만든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서 한해 5000억원의 보관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여전히 소주, 맥주를 전부 수입 홉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는 쌀 부족 시대의 정책을 아직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정부 정책의 문제다.”
국내 쌀 소비 측면에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북한에서는 식량 부족에 따라 주민들의 술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에 국내산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술 공장을 지어 대규모 생산을 할 경우, 저비용 및 고품질의 제품을 공급하면 국내산 쌀 재고 해소는 물론 국내 업체의 시장진출 기회가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프리미엄 제품의 소비 및 과시 성향이 있다는 점은 향후 북한 주류 시장에서 프리미엄과 레귤러의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고위층 및 간부를 통해 제품 확산이 용이하다. 알코올 도수 25%의 증류식 타입 소주가 북한의 가장 대중적인 제품이 될 것이다. 맥주는 독일식 맥주 제조방식이 북한 주민들의 기호에 맞을 것이다. 음주문화와 술의 소비는 북한 사회의 저변을 파악하고, 통제와 일탈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파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