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상공회의소 여성리더십 프로그램 WIR의 멘토로 활동 중인 한국과 독일의 여성 리더 4명의 멘토가 있어요. 이들이 말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과 사회에 만연한 유리천장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우리가 더 젊었을 때 누군가 이야기를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독상공회의소 여성리더십 프로그램 WIR(위어, Woman In KOREA, 이하 WIR) 멘토로 팔을 걷어붙인 계기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극복한 한국과 독일의 여성 리더들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2019년 3월 OECD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는 독일 57점, 한국 25점으로 OECD 국가 중 각각 22위, 29위다. 이 만남에는 공감과 격려를 넘어선 강한 유대감이 있다.

 

 

네 사람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같았다.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할 말도, 해주고픈 말도 많은 엄마이자, 상사이자, 동문이자, 고객이다. 포브스코리아는 한독상공회의소 여성리더십 프로그램 WIR의 멘토로 활동 중인 한국과 독일의 여성 리더 4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민희경 CJ제일제당 부사장 겸 CSV 사회공헌추진단장, 허금주 교보생명 전무, 바바라 촐만 한독상공회의소(KGCCI) 대표, 잉그리드 드렉셀 바이엘코리아 대표다. 민 부사장과 허 전무는 이화여대 동문으로 업계에서 만났다. 한독상공회의소는 교보생명 고객사로 관계가 돈독해졌다.

 

드렉셀 바이엘코리아 대표는 한독상공회의소 한국 대표인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과 함께 독일 대표를 역임하며 촐만 대표와 여성 리더십에 높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여성 리더들은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고 임원 자리에 올라 여성 직장인 멘티들에게 본보기가 됐다. 서울 광화문 그랑서울 공유오피스 ‘스페이시즈’ 회의실은 네 사람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네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잉그리드 드렉셀 바이엘코리아 대표(이하 드렉셀): 독일 기업에 종사하니 한독상공회의소덕에 기업 간 자연스러운 만남이 가능했어요. 한국에 처음 온 날 촐만 대표를 봤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바이엘은 교보생명의 클라이언트라 허 전무가 이화여대 ‘여대생커리어페어’에 강연자로 초청해주면서 친해졌어요. 알겠지만 여자들끼리는 서로 연결해주는 창구가 많아요.(웃음)

민희경 CJ제일제당 부사장: 한국 여성 경영자들이 모여 비즈니스 리더십 아이디어를 공유했는데 그 커피 모임이 WIR로 발전했어요. 허 전무님과는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이화여대-매일경제 리더십 과정을 함께 했어요.

허금주 교보생명 전무: 민희경 부사장님, 2000년대 초반이었나요? 우리가 하버드 비즈니스 컨플릭트 수업에서 만난 게…. 민 부사장님 부군인 장석환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대표님은 제가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가족 친구(family friend)입니다. 한독상공회의소도 저희의 고객사고요.

한독상공회의소의 여성리더십 프로그램 WIR가 2기를 맞았습니다.

바바라 촐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이하 촐만): 올해는 특별한 해예요. WIR는 ‘영유아 단계’로 시작해 걸음마를 뗐어요. 지난 1기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는 멘토와 멘티를 두 배로 늘렸는데 아주 기대가 큽니다.

허금주: WIR 설립을 위해 2017년부터 한국 거주 외국인, 한국인 여성 리더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어요. 준비가 긴 만큼 보람이 컸어요.

민희경: 1기가 성황리에 끝난 건 멘토와 멘티 모두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양방향의 배움이 있어서예요.

WIR 에 참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민희경: 여성 경영자들의 모임에 가면 “우리가 더 젊었을 때 누가 미리 알려줬으면”이라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시행착오를 줄이고 해결책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았거든요.

촐만: 전 2013년 한국에 와서 여성 임원이 매우 보기 힘들다는 걸 알았어요. 놀란 건 회의 때 여성이 저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었어요. 드렉셀 대표가 한국에 오고 나서 WIR를 기획했지요. 글로벌 기업들의 코칭 멘토링 플랫폼 구축을 돕는 허 전무님께 WIR설립과 프로그램 개발을 해달라고 졸랐어요.

사실 여성 멘토 프로그램은 많은데 WIR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허금주: 전 교보생명에서 8년째 다양성과 포용성(D&I, Diveristy & Inclusion)모임을 이끌고 있고 G20에서도 여성 기업 대표로 정책 제안을 하고 있어요. 여성가족부 청년 여성멘토링 사업에도 참여 중이고요. WIR는 외국인 여성 CEO와 임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이해도를 높이고 외국인 임원과 소통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어요.

민희경: 많은 멘토링 프로그램이 단발성 행사거나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을 듣는 방식인데 WIR는 실제 단계를 밟아온 사람들 경험을 공유해요. 비슷한 문제를 고민한 멘토가 돌파구를 마련할 때까지 솔직한 경험과 지식을 나눌 수 있지요.


일과 가정 양립 해법,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한독상공회의소 여성리더십 프로그램 WIR의 멘토로 활동 중인 한국 독일 여성 리더들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와 꿈을 먼저 찾아라”고 조언한다.

 

참석한 멘티들은 어떤 고민이 가장 많았나요?

민희경: 일과 가정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자녀 양육과 가정 생활 유지는 물론, 회사에서 목표를 성취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거든요.

허금주: 특히 중간관리자 직급 여성에겐 육아나 교육 문제가 큰 장애물이 돼요.

드렉셀: 가정을 꾸리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육아가 삶에 들어오면 시간은 적어지니까요. 회사에선 더 많은 임무에 집중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사정은 더 많아지죠. 남성들의 육아휴직이나 가족 케어가 더 절실합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할까요?

드렉셀: 전 직원에게 사생활과 업무생활간 균형을 맞추라 해요. 상당시간 업무를 하고 있는 시간도 ‘삶’이죠. 업무 시간을 내가 ‘살고 있다’고 느끼고 최선을 다해 즐기고 일해야 해요.

허금주: 저는 아직도 매일 “나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웃음) 슬프지만 현실이에요. 군 복무 중인 대학생 아들 둘을 키우는 데 주변의 여러 자원이 필요했지요. 육아를 할 때는 정시 퇴근 직무를 선택했어요. 15년간 시부모님 모시고 생활하면서 급여의 상당 부분은 시부모님을 돕는 가정부에게 투자 했어요. 범준이 현준이에게는 엄마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도록 일터를 보여주거나 영화 제작자인 남편 김호성(‘신과 함께’, ‘곡성’, ‘광해’ 제작자)에게는 조언을 들었어요..

촐만: 전 반대의 상황이긴 한데요. 일과 가정 양립의 도전을 느낄 필요가 없었어요.(촐만 대표는 미혼이다) 두 가지가 제 머릿속에 없는 건 가정의 일에 강요당하지 않아서겠죠. 가끔은 축복이고 가끔은 저주 같긴 하지만요.(웃음)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여성인재 등용 방침을 내세웠지만 민간기업이 실천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르죠.

허금주: 우리나라 대기업이 여성인력을 공개 채용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후반부터입니다. 5~10년 사이에 여성 임원으로 승진 가능한 인력들이 배출되기 시작할 거예요.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은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M 커브(여성 경력 단절)가 심하게 형성돼 있어요.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두 가지는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 연금지급의 형평성입니다.

민희경: 제도적인 한계보다 더 큰 건 사회적·문화적 한계 같아요. 여성 역할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여성 특유의 장점으로 부각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나 ‘감성 리더십’도 어찌 보면 편견이에요. 여성 기업인들도 남자와 다르지 않은 강인한 리더십과 강점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겨내거든요. 허 전무 말씀대로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많아요. 기업은 자녀 양육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CJ는 여대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로 꼽히는데 ‘가정이 행복해야 기업이 행복할 수 있다’는 가족친화적 기업문화를 추구하고 있어요.

촐만: 사실 전 한국 전문가가 아니라 끼기가 그렇지만 한국 기업에는 여전히 유교적인 남성 문화가 있는 듯해요. 변화는 사실 학교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죠. “출산 통계는 자신과 커뮤니티, 나라에 다음 세대를 잇고 싶어 할 만큼 자신감과 행복감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여론의 척도”라고 말한 엘리자베스 H. 스테펜 조지타운대 교수의 말이 생각나네요. 자녀를 낳을 수 있는 환경,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유리천장지수가 말해주는 ‘위계’


한국과 독일의 기업문화는 어떻게 같고 또 다른가요?

허금주: OECD 기준 두 국가 모두 유리천장지수가 20위권대라 논의가 필요해 보이지만, 실제 지수는 2배 이상 차이가 나요. 한국은 6년째 꼴찌고요. 독일에서는 ‘Initiative Chefsache’로 성평등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산업, 공공기관, 미디어 네트워크로 사회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요.

민희경: 사실 한국이든 독일이든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고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기본적인 비즈니스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여성 기업인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더욱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해요. 정도의 차이겠지요.

독일인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드렉셀: 전 독일 기업에 비해 한국 기업이 훨씬 위계적이라고 느꼈어요. 외국인 여성 리더라는 위치 덕인지 상대적으로 젊은 직원들에게 그 장점이 부각되는 것 같거든요.

촐만: 1990년대 일을 시작한 저는 사실 성차별을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독일에서 먼저 여성인권 운동이 일어나서 아닐까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사업에서 여성들도 함께 일터에 나갔던 것도 영향이 있겠죠. 중요한 차이는 현재 남성의 육아휴직 등 기업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여성 직장인으로 힘드셨던 점이 있으셨다면.

허금주: ‘편견’이요. 저는 아직도 남자 직원들과 기업체를 처음 방문하면 상대방은 항상 저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와서 명함을 건네요. 여성은 직급이 낮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중에 인사를 하면 “전무님이셨군요”라고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촐만: 명함! 맞아요. 제가 명함을 보여주기 전에는 미팅을 가면 반겨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특히 젊은 남성분들이 놀랄 때가 많더라고요.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철학이 있으셨나요?

민희경: 맷집이요.(웃음) ‘회복탄력성(Resilence)’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회생활에서 무수히 겪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얼마나 빨리 극복해내느냐가 경쟁력이 될 수 있어요.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언제 참아야 되는지를 알고 좌절을 겪었을 때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가 특히 중요해요.

허금주: 민 부사장님과 비슷해요. 대추 한 알도 절로 영글지 않아요. 자연의 온갖 변화를 겪고 버텨야 완숙한 단맛이 깃듭니다. 힘들 땐 마음의 근력이 생기는 중이라고 다 잡았어요. 요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요.

드렉셀: 제 모토는 “위로는 도전하고 아래로는 지원하라”입니다. 팀의 리더로 앞에 선다는 건 요청에 따라 뒤에도 안에도 옆에도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요.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지?

드렉셀: 자신감은 커리어에 매우 중요한 태도인데 가끔 그걸 잊는 것 같아요. “소녀와 같은 자신감으로, 여성의 태도로, 숙녀의 품격으로 목소리를 높여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생각해야 해요. ‘당신은 실수를 한 게 아니다. 무언갈 얻고 배운 것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요.

허금주: 참 와닿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직장에서 적절한 경쟁은 유익해요. 자신과의 경쟁에서 먼저 이기고 나서요. 여성은 직장생활에서의 경쟁상대가 여성들이 아닌 직장 동료 전체임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촐만: 제가 함께하는 그룹은 프로다운 삶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는데요. 상당수 사람이 자신의 목표가 아닌 선생님의, 부모님의, 가족의 것으로 가져와요. 자신이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는 거죠. 특히 여성은 가족과 일에 대한 도전을 동시에 해결하는 데 ‘기능’하려고 하기도 하죠. 삶에서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찾았으면 해요.

민희경: 자, 이제 그 얘기 해주러 2기 멘티들을 만나러 나가실까요?(일동 웃음)

 

박지현 기자 centepark@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촬영협조 SP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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