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예술혼이나 작품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박수근은 우리나라 미술계 최고의 작품가를 이루고 있는 화가예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에 낙찰됐지요. 지난 6월 5일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서는 부설 박수근어린이미술관 개관식이 열렸어요. 아버지의 예술혼을 지키고 기리는 일에 열심인 장녀 박인숙 선생을 만나보았어요.

 

박수근어린이미술관 내부에 있는 아버지의 작품 앞에 선 박인숙 선생. 칠순을 지난 할머니로 보기엔 너무나 세련되고 당당한 모습이다.

 

박수근(1914~1965)은 우리나라에서 그림값이 가장 비싼 화가다.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빨래터’가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유화 작품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은 2019년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23억 원에 팔렸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최근 발표한 ‘KYS 미술품가격지수’에 따르면 2019년 거래된 박수근 작품의 호당(22.7×15.8㎝) 가격은 전년(2억1000만원)보다 16% 오른 2억3851만원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2위 김환기(3490만원)와는 한참 차이가 난다.

작품이 워낙 고가다 보니 위작 시비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2007년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에 팔린 직후 미술 전문지[아트레이드]가 ‘빨래터’의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옥션 측은 이 잡지사를 상대로 3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3심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2009년 11월 대법원은 “그림은 진품으로 추정된다”라면서도 “잡지사의 배상 의무는 없다”라는 묘한 판결을 내렸다.

박수근 화백의 장녀인 박인숙 선생(76)은 이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 아버지의 정신을 지키고 기리는 일에 정성을 쏟아왔다. 그는 최근 [내 아버지 박수근](삼인)이라는 책을 냈다. 아버지가 헤쳐왔던 신산한 시대상과 어머니와의 순애보, 끝없는 가난과 혼란 속에서 예술혼을 지켜온 박수근의 일생이 촘촘히 담겨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 근대화 시기를 살아낸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들이 박수근의 작품 세계와 맞물리면서 독자를 웃기고 울린다.

지난 6월 5일 박수근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서 박인숙 선생을 만났다. 이날은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 부설 박수근어린이미술관 개관식이 열렸다. 박 선생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미술 교사와 중학교 교장을 거쳤다. 은퇴 후엔 작품 활동과 함께 시니어 모델 일을 시작해 제2 인생을 힘차게 열어가고 있다.

 

이날 박 선생은 칠순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의상과 매너로 연단에 섰다. 그는 “아버지의 정신을 잇는 일에 힘을 합쳐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남은 생애를 박수근 정신을 널리 알리는데 바치겠다”라고 했다.

박수근어린이미술관 교육실에서 박 선생을 만났다. 인터뷰는 딸의 입을 통해 ‘레전드 박수근’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박수근어린이미술관 개관, 아버지 기뻐하실 것

 

서울 창신동 시절 부모님과 즐거운 한때.

 

박수근어린이미술관 개관에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그럼요. 저기 뒷동산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가 보시면 너무 행복해하실 겁니다. 아버지는 말이 없어도 다정다감하셨어요. 어린 우리를 위해 동화책을 만들고, 신문 오려서 소설책, 그림 오려서 미술책을 만들어 주신 분이죠. 우리도 자식을 키우지만,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직접 몸으로 하기가 힘들잖아요. 전시된 내용도 제 취향에 잘 맞아서 제가 어린이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양구에 우리 전시관이 생기는데 그러면 여기 내려와 지내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어려운 아이들, 그림 배우고 싶은 어른들 대상으로 재능기부도 하고 싶어요.”

[내 아버지 박수근] 책을 낸 계기가 있었나요?

“어머니가 [박수근 아내의 일기]라는 책을 냈는데 쓰기로 한 내용의 3분의 1만 쓰고는 중단됐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못다 하신 얘기들을 언젠간 내가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주위 분들도 자꾸 권하셨는데 마침 작년에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어요. 제 구술을 녹음하고 실력 있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좋은 책이 나온 것 같습니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찾는 분들도 많고 신문·방송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박수근미술관 관장님 말씀으로는 벌써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아버지와 어머니 순애보는 영화나 드라마 같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있는 아버지 동상 앞에 선 박인숙 선생.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거짓도 없고 늘 그 자리에 있고…. 아버지가 그린 새를 보면 너무나 이뻐요. 근데 지금 세상은 얼마나 살벌한가요. 사람이 무섭지요. 언제 돌변할지도 모르고, 컴컴한 데서 사람 보면 화들짝 놀라게 되고요. 저는 박수근미술관과 이 책을 통해 우리 영혼이 빨래터처럼 세탁이 되고, 새처럼 아이처럼 되어서 사람 보면 반가운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옛날 초가집에서 이웃끼리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서 같이 나눠 먹던 그런 정이 흐르고 맥이 정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연필 살 돈이 없어 뽕나무 가지를 꺾어다 태워 목탄을 만든 뒤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일제 사상검열에 걸려 집안이 풍비박산 난 뒤 박수근은 26세까지 5년간 춘천·포천·서울 일대를 떠돌며 홀몸으로 생계를 잇는 가난한 그림쟁이로 살았다. 1936년 강원도 금성(현재 북한 지역)에 다시 모인 박수근 가족의 바로 윗집이 천생연분으로 맺어지게 되는 김복순의 집이었다.

윗집 처자를 빨래터와 담벼락 사이에서 몰래 훔쳐본 순간 사랑에 빠진 박수근은 절절한 연모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낸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인 데다 이미 괜찮은 혼처를 봐 놨던 김복순의 아버지는 ‘편지 사건’을 알아챈 뒤 딸을 흠씬 매질한다. 그 장면을 담 너머로 지켜보던 박수근은 고통과 좌절로 인해 병을 앓게 된다.

 

이에 박수근의 아버지가 윗집에 들이닥쳐 “내 아들 살려내라. 당신네 집안이 얼마나 잘났기에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냐. 우리 아들이 아니면 당신 딸을 이렇게 진심으로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으냐”며 소리소리 지른 뒤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린다.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평양과 금성을 오가며 살던 중에 한국전쟁이 터졌고, 박수근이 먼저 남쪽으로 피신하면서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하게 된다. 김복순은 어린 것들과 젖먹이를 업고 걸리며 피난길에 오르고,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도착해 2년 만에 창신동에서 박수근과 극적으로 상봉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서럽고 아픈 시간이었다.

 

“이건 몇 억…” 돈으로 말하는 예술혼 서글퍼

 

1. 홍콩 경매에서 약 23억원에 팔린 ‘공기놀이 하는 아이들’. / 2. 2008년 1월 위작 시비로 감정을 받고 있는 작품 ‘빨래터’. / 3. 박수근이 딸 박인숙을 모델로 그린 작품 ‘책 읽는 소녀’.

 

박 선생은 요즘은 아주 친한 사람 아니면 감정을 잘 안 해준다고 했다. “아버지 그림 좀 감정해 달라”고 가져오는 사람들 보면 ‘진품이라고 얘기만 해 주면 최하 몇억’이라는 생각에 눈이 희망에 차 있다고 한다. 박 선생은 무서워서 위작이라는 말은 못 하고 “저는 이 그림이 좀 낯설어요. 감정협회 가셔서 여러분들한테 감정을 받아 보세요”라고 말한다는 거다.

“저한테 감정해 달라고 가져오는 건 다 가짜라고 보면 돼요. 진짜면 들고 올 이유가 없죠. 양구 사시는 아버지 친구분이 아버지한테서 받았다면서 그림을 들고 온 적도 있었어요. ‘이건 아버지가 주셨든 하나님이 주셨든 제가 볼 때는 아버지 그림이 아닙니다’ 했더니 ‘사실은 아닌 거 알고 있다’며 미안하다고 해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아버지 그림이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싸움의 대상이 되는 게 가슴 아팠어요. 아버지 100주기 전시회 때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작품의 가치와 박수근 정신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이건 얼마짜리, 이건 몇 억짜리’라는 얘길 하는데 참 서글펐어요.”

헤어지기 전 “박수근 정신을 계승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물었다. 박 선생은 교육자의 마음으로 말했다. “아이들의 가치관이 많이 변했어요. 내가 좋으면 좋고 내가 안 좋으면 안 좋은 겁니다. 모든 게 내가 기준이 되는 거죠. 배려도 없고 참 무서워요. 지식 위주로만 자녀 교육을 시키지 말고, 인성·감성·지식 교육을 조화시켜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 교육이고, 사회가 교실입니다. 서로 믿음이 오가는 사회를, 아버지 그림과 제 책을 통해 만들고 싶습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월간중앙 더 보기

대한민국 ‘최초 수제화’ 거리에 발길이 뚝 끊긴 이유

디지털 문명 속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가 열렸다

긴장의 연속 남북관계, 남북 군사력 전격 비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