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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계속 공부해도 될까..?’ 발만 동동 구르는 편입준비생들

아직도 혈연·지연·학연은 대한민국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인맥 풀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학벌주의는 인맥뿐만 아니라 취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대학 편입이 활발히 이루어져요. 하지만 주요 대학들이 첨단학과 신설시 편입학 정원을 축소한다는 이야기가 돌아요. 편입학 가능 여부는 11월에야 판명된다고 해요.

 

성균관대 2014학년도 편입시험을 마친 수험생이 캠퍼스를 나서고 있다. 당시 130명 모집에 4714명이 응시했다.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는 경쟁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기업에서 ‘블라인드 채용’ 등 이를 타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내세우지만, 학벌주의는 여전한 위력을 갖는다. 대학 졸업장은 한국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타는 유력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안간힘을 쏟는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입시에 실패한 이들 중에는 편입이라는 제도를 통해 끝내 바라는 대학의 졸업장을 거머쥐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국내 대학 편입 시장이 일대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학 정책이 편입 시장의 문을 확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4월 29일 제4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첨단분야 인재 양성 추진’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정책은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대학의 첨단학과 신·증설을 통해 2021학년도부터 미래 첨단분야 학생 정원을 증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대학 자체 정원을 놓고 보면 제로섬 게임과도 같다. 첨단학과 신설 과정에서 늘어나는 정원을 대학 내 결손인원과 편입 정원으로 대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보다 단순화하면 편입 정원을 떼서 신설되는 첨단학과 정원으로 돌리는 방식이다.

편입 준비생들은 첨단학과 신설로 인해 목표했던 대학의 편입 모집정원이 줄어들어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친다. 편입학원이 즐비한 서울 강남역 일대가 이런저런 소문으로 술렁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019년 지역 거점 대학에서 4학기(2학년)를 이수하고 휴학 중인 최소진(23) 씨는 ‘인서울’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편입 준비생이다.

 

최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쳐도 유분수”라며 “도저히 공부가 안된다”며 운을 뗐다. 최씨는 지난 6월 학원으로부터 그가 목표하는 대학에서 일반편입 모집정원을 감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씨는 1년간 목표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좌절감에 삶의 의욕마저 꺾이는 느낌이다. 최씨는 “당장 지원하려고 했던 학과가 과거엔 5명 정도 모집해 경쟁이 치열한데 이번에는 아예 안 뽑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씨와 같은 편입준비생들의 불만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네이버 편입준비카페 ‘편준사’에선 “부당한 편입 티오 감축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육부의 편입 차별’이란 내용의 청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첨단학과 정원 8000명 증원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첨단분야 인재양성 추진 상황을 논의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번 정부가 내놓은 공지는 정말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가 내린 결정이 맞습니까? 저는 현 교육부 장관님의 무능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또한 편입 일정과 티오 공지는 11월이 되어서야 발표가 나는데 감축 발표 난 상황에서 수험생들은 목표대학 티오가 0명일지도 모르는 시험에 몇백만원을 들여가며 귀한 1년을 소모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 정부와 교육부는 이러한 통보는 대학 진학을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수험생들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편입 준비생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차별받는 편입 입시 제도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올린 글의 일부다. 청원 참여 인원은 7천 명(7월 5일 기준)을 넘어섰다.

대학 편입학은 한 대학에서 다른 대학으로 학적을 옮기는 입시 제도다. 대학마다 자체 시험을 통해 학생을 모집한다. 전형요소에는 주로 영어 필기고사와 논술, 전적대 성적, 면접 등이 있다. 전공 심층 필기시험을 보는 대학도 있다. 편입의 유형은 일반편입학(일반대학 2학년 이상 수료자 및 전문대학 졸업 및 예정자)과 학사편입학(4년제 일반대학 졸업 및 예정자)으로 나눠진다. 매년 1만 명의 학생들이 편입시험을 치르고 있다. 최근 편입 경쟁률은 수십 대 일에서 많게는 수백 대 일 가까이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4월 정부 정책 발표로 편입시장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지만, 충격의 발화점은 지난해 11월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의 첨단학과 신·증설 방안 발표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 주요 대학의 모집정원이 묶여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양성이 어렵다는 대학 측 불만이 점증하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 정책을 내놓았다.

 

2021학년도부터 미래 첨단분야 학생 정원 8000명을 증원한다는 게 골자다. 2025년 이후 10년간 미래 첨단분야 학생을 8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희망 대학에 한해 미래 첨단기술 분야인 인공지능(AI), 차세대 소재·부품, 바이오·헬스 등을 특성화한 학과 신·증설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체 학생 정원은 확대하지 않겠다는 단서가 달렸다. 학과 신설 등 학제 개편은 하되 대학 정원 안에서 신축적으로 하라는 주문이다. 국내 대학에서 자퇴나 편입 등으로 매년 4만~5만 명의 결손이 발생한다. 이 가운데 일부 인원을 첨단분야 학과 정원을 늘리거나 관련 학과를 신설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라 첨단분야 학과에 신입학 정원 1명을 늘리려면 일반편입학 인원 2명을 줄여야 한다. 학사편입학은 대학에서 정원 외 전형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외된다.

결과적으로 편입생 모집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당장 올해 편입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부터 적용된다. 올 초부터 편입을 준비한 김 모 씨(24)는 “정부와 대학 당국을 믿고 편입학을 준비해온 우리 같은 이들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사립대학에서 교육부와 연계해 신설학과를 개설하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은 일반 편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다. 정부 정책이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지 않고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통에 전국의 편입 준비생들만 죽어난다.


일부대학 일반 편입 모집정원 대폭 감소

 

 

교육부의 정책 발표 이후 주요 대학들은 일반편입 모집을 감축한다는 내용을 공지하기 시작했다.

6월 18일 한양대는 신입학 첨단분야 학과인 융합전자공학부·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데이터사이언스학과·심리뇌학과를 신설하면서 모집인원 86명을 증원한다고 밝혔다. 첨단학과 86명 증원으로 인해 2배수인 172명을 2021년 일반편입학 모집인원에서 감축하기로 공지했다.

 

한양대는 작년 일반편입학으로 207명을 뽑았다. 한양대 입학처 관계자는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2021학년도 편입 모집 단위별 모집 인원은 추후 11월쯤 모집요강 통해 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는 신입학 첨단분야 학과인 데이터과학과·스마트보안학부·융합에너지공학과 등 첨단분야 학과 3개를 신설하고 각각 정원 30명씩을 선발한다고 6월 16일 발표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첨단학과 신설로 인해 재작년과 작년의 1, 2학년 결손인원 여석에서 180석을 이용할 예정이며, 편입학 정원 감축과 관련해서는 대략 10월경쯤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신여대는 작년도 결손인원을 활용해 첨단학부를 신설했고, 21년도 신입학 정원을 212명을 증원했다고 6월 30일 밝혔다. 이로 인해 2021학년도 일반편입학 모집인원은 2명 내외로 결정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성신여대는 작년 일반편입학으로 34명을 모집했다.

서울과기대와 서울시립대는 일반편입학 모집정원을 120명, 80명 감축한다고 밝혔다. 첨단학과를 신설하는 타 대학들도 모집정원 감축 관련 공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대학의 정확한 학과별 편입 모집인원은 11월 중순부터 공개될 예정이다.

첨단학과 신설로 인한 불똥은 학생과 학부모 외에도 편입전문학원으로도 튀었다. 종로에 위치한 A학원 관계자는 “하루에 두세 번 이상 편입 정원 감축 관련 문의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돌발적으로 터지다 보니 편입 준비생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며 “일반편입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포기하고 수능이나 재수를 넘어가는 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현대사이버평생교육원 장재영 편입컨설턴트 팀장은 “이런 정책은 바로 적용할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 것”이라며 “각 대학이 올해부터 편입 정원을 줄이다 보니 현장에서는 큰 혼란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사이버평생교육원만 해도 100명 이상의 편입준비생들이 장 팀장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다.

 

그는 “모집요강이 나오는 11월 중순까지 학생들은 불안에 떨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지망 대학이나 학과를 그때 가서 바꿔야 하는 등 깜깜이 편입이 불가피해진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불가피한 현실이기도 하다. 출산율 저하에 따라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의 정원도 줄이거나 동결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한 입시 컨설턴트는 “과거에는 교육부가 인문계열 학과 정원수를 줄이고 자연계열 학과를 늘리는 정책을 폈다”면서 “그에 대한 여론이 등을 돌리자 이제는 편입 정원을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기조·국정과제 맞춘 정책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2020학년도 편입학 모집 필기고사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348명 모집에 9633명이 지원했다. / 사진:건국대

 

실제 교육부는 16년도부터 프라임(산업 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을 펼쳤다. 프라임 사업은 취업과 대학 실적에 좀 더 유리한 자연계열 학과의 정원수를 늘리는 대신, 인문계열 학과 정원수는 줄이는 사업이다. 프라임 사업은 정원수를 감축한 대학을 대상으로 가점을 부여하고, 이공계를 좀 더 활성화시킨 대학에는 지원금을 준다.

교육부는 이번 첨단학과 정책이 이공계 분야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인문계 정원을 감축한 기존 이공계 분야 육성사업들과는 차별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 내 학과들끼리 자발적으로 융합학과를 신설하도록 하거나, 자퇴·편입 등으로 발생한 기존 결손 인원을 첨단분야 정원 확보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인재 양성에 필요한 첨단 특수학과는 만들되 정원은 늘리지 말라는 게 정부의 정책기조이자 국정과제다. 이런 기조 위에서 각종 논의를 거친 끝에 결손인원 활용방안이 나왔다고 교육부는 말한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작년 11월 사회관계장관회의가 있고 나서 대학에 관련 계획을 알렸고 각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정책을 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대학들이 첨단학과를 신청한다 해도 특별한 혜택은 없고 강제성을 띠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편입학 정원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편입학 정원 감소로 편입 준비생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전국 대학 중에는 편입에 따른 결석으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는 대학도 적지 않아 이런 사정까지 감안해서 정책을 입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대학이 교육부 첨단학과 신설 정책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주요 대학 중 연세대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에 퇴임한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교육부의 첨단학과 정책에 “제적·퇴학 인원인 ‘결손인원’을 수도권 대학 학과 신·증설에 활용하도록 한 정부 방안은 실효성이 없고 제대로 작용하기도 힘들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회의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김 총장은 “편입생 정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쉬운 방법이 아니며 학과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다”며 우려를 표했다.

편입준비생 최소진(24) 씨는 무엇보다 경과 기간을 두지 않고 정책 발표 후 바로 적용하는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씨는 “정책 발표 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지 않냐”고 하소연했다. A 학원 편입학원 관계자도 “11월부터 대학의 학과별 편입 모집정원이 발표되면 논란은 한층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찬 바람이 부는 가을에 다가서면서 대학 편입시장의 비명은 더 커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심민규 월간중앙 인턴기자 smkyu49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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