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는 국내 1호 필적학자라고 불려요. 20년 넘게 검사 생활을 하며 글씨와 사람 사이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공부했다고 해요. 그는 필체가 바뀌면 인성도 바뀐다고 주장하며 글씨 연습을 하루 30분씩 6주만 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해요.

 

독립운동가 친필 전문 컬렉터인 구본진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는 “독립운동가의 필체에는 공통적인 강한 의지가 보여진다”고 말한다.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려 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대뜸 사진 이야기를 꺼내는 이 사람. 국내 1호 필적학자로 불리는 구본진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54, 사법연수원 20기)다. 구 변호사는 단순히 취미 차원에서 사진을 배우려는 게 아니다. 그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친필 1100여 점 등 문화예술품을 3000점 가까이 소장하고 있는 전문 컬렉터이기도 하다.

“전문 작가에게 촬영을 의뢰하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원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있고 이동 중 훼손 등의 우려도 있어 제가 직접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 배우는 것 역시 그가 접하는 예술품을 보다 가치 있게 소장하기 위한 일인 셈이다.

구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등 20년 넘게 검사로 일하면서 주로 강력범을 상대했다. 범죄자들의 자술서를 보면서 이들의 글씨에서 특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살인범이나 조직폭력배들은 같은 자음이라도 모양이 계속 바뀌는 등 글씨의 규칙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글자 크기도 매우 크거나 행 간격이 좁고 옆 행을 침범한다든지 일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충동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보고 그는 글씨와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예감에 휩싸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필적학’에 푹 빠져들어 독일, 프랑스 등 주로 해외서적을 통해 공부했다. 현재 미국필적학회(AHAF)와 영국필적학자협회(BIG)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그는 다각도로 수집한 자료에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필체에도 차이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려 했다기보다 친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두 집단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더 나아가 “필체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고 믿는다.

 

글씨체를 의식적으로 바꾸면 성격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면 행동 패턴이 변해 인생도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다수의 방송 출연과 자신의 유튜브 채널(K-Relic)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전파하고 있다.

구 변호사는 최근 [한민족과 홍산문화]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항일지사 친필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신채호, 박은식 등이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던 한국 고대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고조선과 관련 있는 홍산 문화를 제대로 연구해 1인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1.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묵 ‘산악기상(山嶽氣像)’. / 2. 이완용의 서예작품.

 

필체 연구만 근 20년. 그의 분석은 이제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수준에 와 있다. 2017년 10월, 국방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글씨 분석을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2018년 6월에는 영국의 [로이터 통신]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직접 서명한 김정은의 필체에 대한 구 변호사의 분석 인터뷰를 싣기도 한 바 있다.

트럼프·김정은의 글씨체는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 구 변호사의 분석이다. 기초선이 오른쪽 위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을 보아 둘 다 긍정적이며 자신이 생각한 대로 목표를 향해 힘차게 질주한다는 것이다. 두 지도자의 글씨는 행 간격이 좁아 다른 글자를 종종 침범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그럼에도 그는 “큰 사고를 칠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필체를 봐서는 트럼프나 김정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세다. 특히 김정은은 충동적인 면이 있고, 트럼프는 이익에 충실한 사람이다 보니 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지나치게 극단으로 막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 국방부 요청 당시 작은 도발은 있을 수 있지만, 전쟁으로 가는 등의 큰 위험성은 없을 거라고 의견서를 작성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수집하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친필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그가 올 초 펴낸 저서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보면 백범 김구의 글씨체는 힘이 넘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특히 필선이 통통하고 부드럽다. 이를 놓고 구 변호사는 “인자하고 후덕한 인품”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글자를 쓸 때 종이에 여백을 두지 않고 바짝 붙여 쓰는 것은 마음먹으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성향을 나타낸다고 한다.

구 변호사는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의 글씨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면서도 ‘ㄷ’ ‘ㅈ’ 등에서 각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전반적으로 그들의 글씨는 아주 좋은 편”이라고 덧붙인다.

그중에서도 그가 뽑는 좋은 필체를 가진 독립운동가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고종 특사’ 이상설이다.

“보통 사람이 강인하면 섬세하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상설의 필체에는 용기가 있으면서도 섬세하다. 인품이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수준이 매우 높아지면 글씨의 수준도 높다. 그런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들과 정조, 정약용 등이다.”

그러면서 구 변호사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입수한 독립운동가이자 제2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임병직 박사(1893~1976년)의 서체가 담긴 병풍을 최초로 공개했다. 1972년 임 박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병풍에 대해 구 변호사는 “그의 붓글씨는 이전에 딱 한 번 본 적 있다. 남겨진 자료가 거의 없어 아마 앞으로 이만한 글씨가 적힌 자료가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희소성을 강조한다.

 

구본진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가 월간중앙에 최초 공개한 임병직 박사가 쓴 글씨로 만든 병풍. 임 박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제2대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임 박사의 필체에 대해 구 변호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글씨가 전체적으로 네모반듯한 것은 다소 보수적이면서 배운 대로 행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보통 친일파는 글씨 끝이 밑으로 내려가는데 병풍에서는 글씨 끝이 올라간다. 자기 뜻을 이루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또한 글씨 자체가 큰 것은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글씨에서 강한 의지가 보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의 길을 간 것이고 리더십도 갖추고 있어 장관을 역임한 것이다.”

친일파의 필체는 어떨까. 구 변호사는 “친일파의 글씨는 글자 크기와 행간이 불규칙하다. 판단력이 미흡하고 자기 훈련이 잘 안 되어 있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특성”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반민족행위자 중에 이런 성향이 꽤 나타난다고 한다.

이완용은 당대의 명필가로 불렸다. 이 때문에 그의 친일행적으로 글씨가 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구 변호사는 “필획이 깨끗하지 못하고 기교가 지나치다. 인격을 떠나 글씨 자체만으로도 명필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행의 간격이 좁아 옆의 행 글씨에 거의 닿는 것은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나타내고, 글자 크기와 행 간격이 들쭉날쭉한 것은 예측하기 힘든 사람임을 드러낸다. 속도가 빠른 것을 보아 판단이 빨랐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글씨는 사람의 내면을 찍은 엑스레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직군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필체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가령 우울증 환자의 글씨는 오른쪽으로 하향하는 식인데 사망 직전 히틀러의 글씨가 오른쪽으로 많이 내려가는 모습을 띠었다 한다. 그가 당시 상당히 우울증이 심했으리라고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부자가 되는 글씨, 공부 잘하는 글씨, 리더가 되는 글씨 등 자신이 원하는 인간상에 해당하는 필체를 연습하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긴가민가하는 기자의 눈치에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은 감정의 문제라 얘기하지만,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일반 사람은 한번 화내고 말 것을 강력범은 뇌가 충동을 자제하지 못해 과하게 반응한다. 손에 문제가 생겨도 필체는 바뀌지 않지만, 뇌 질환이 생기면 글씨가 바뀐다. 글씨를 손으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뇌로 쓰는 것이다. 연습을 통해 뇌를 바꾸는 것으로 보면 된다.”

실제로 필적학이 발달한 외국, 특히 유럽에서는 심리치료에 글씨 테라피를 활용한다. 글씨가 치료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비슷한 글쓰기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바로 서예다. 조상들이 인격 수양을 위해 했던 행동들이 사실 임상 효과도 있었던 셈이다. 알코올 중독자 혹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아동 등에게 서예가 효과 있다는 논문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구 변호사는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글씨 연습을 시키면 성격이 변하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라 말한다. 안정되고 차분하게 정돈된 글씨를 따라 쓰다 보면 성격도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동습관인 글씨체를 의식적으로 바꾸면 성격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면 행동 패턴이 변해 인생도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가꾸는 방법은 참선·명상·요가 등 다양하다. 그럼에도 구 변호사가 글씨 연습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시간·장소·비용에 구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면지에 볼펜만 있으면 되고,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고 시간도 많이 안 든다. 글씨 연습에는 부상을 입는 등 부작용도 없지 않은가. 하루 30분, 6주면 자신의 내면을 바꿀 수 있는데, 그걸 놓치는 게 안타까워서 알리려 하는 거다.”

 

그는 독립운동가 친필 수집을 지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의식 때문이다. 근 20년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만 1100점가량 수집했다는 그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글씨는 처음부터 기증하려고 모았다. 한국 역사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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