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려워하는 노년은 젊음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젊을 때 누렸던 인간적 위엄의 상실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틸 앨리스>를 살펴보자.


치매는 육체보다 정신을 침략하는 질병이다. 인간의 존엄은 육체적 자율성으로 체험되지만, 결국 육체는 정신의 처소일 수밖에 없다. 정신의 온전함이 훼손된다면 육체는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 덩어리에 불과하다. 육체보다 먼저 정신이 세상을 떠나는 질병, 알츠하이머에 대한 공포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버드대 교수, 알츠하이머에 걸리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다. 게다가 그는 알츠하이머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적으로 매우 우수한 여성이다. 게다가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이기에 뇌 활동이 왕성해서 병의 악화 속도가 더 빠르다. 



영화 스틸 앨리스



이 영화는 작가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리사 제노바는 하버드 대학 인지심리학 박사과정에서 수학하던 할머니의 알츠하이머 발병에 충격을 받고 소설을 기획한다. 소설의 주인공 앨리스 역시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이자 인지심리학의 대가로 설정되었다.


그런데 완벽한 앨리스는 겨우 50세의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매일 습관적으로 조깅하던 길에서 행선지를 잃고, 자신이 집필한 책의 제목을 기억해내지 못하며, 중요한 약속은 아예 잊는다. 



줄리안 무어가 담아낸 앨리스


앨리스가 병을 발견하고 결국 앓게 되는 과정은 육체적 질병을 선고 받은 자들의 고통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표현된다. 그녀는 자신의 증상을 갱년기 우울증으로 믿으려 하며 치매가 아닐 가능성을 찾고자 발버둥친다. 차라리 암에 걸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적인 자신의 모습은 끝까지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생활을 관두고 휴식이 주어지자 무너짐은 더욱 가속화된다. 먹고 자고 일어나는 단순한 생활이 그녀에게는 오히려 거대한 혼돈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기록과 논문 및 학위의 과정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고 있었던 앨리스의 고통은 극심해진다.



줄리언 무어 스틸 앨리스



혼돈과 공포, 질투와 낙담. 이 섬세한 감정의 부분들은 배우 줄리안 무어의 연기를 통해 구체화된다. 위 장면에서도 줄리안 무어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고자 애쓰는 여자, 바로 그가 앨리스임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시간 앞에서 앨리스는 하루하루 더 나쁜 상태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다. 그녀가 자신을 잊어도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해주는 한 그녀는 관계 속에서 앨리스로 존재할 수 있다.



스틸 앨리스 알츠하이머



루게릭병에 걸린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유작


영화의 연출을 맡은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영화 <스틸 앨리스>는 그의 유작이 됐다. 근육의 기능이 하나하나 소멸되어 마침내 숨조차 쉴 수 없게 된 감독의 병은 하나둘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의 병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앨리스도 감독도 관객들에게 눈물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당당하고 똑똑한 학자가 앨리스였듯,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는 환자 역시 앨리스다. 병, 노화, 죽음 이 모든 것은 삶의 문제다. 훼손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인간은 존재하며, 뇌세포가 사라진다고 해도 기억은 촉각·시각·청각으로 남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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