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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로마 여행, 기행문으로 미리 알아보는 이탈리아

이탈리아 로마는 다양한 애칭을 가지고 있다. 서정적인 도시, 그루브 넘치는 도시, 치유의 도시 등. 많은 이들이 로마를 꿈꾸고 로마로 향한다. 괴테도 로마에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전 iMBC 대표이사 손관승 또한 로마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번 아웃 증상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로마로 떠났다. 그가 체험한 이탈리아 로마의 섬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탈리아 로마

▎로마를 흐르는 테베라 강은 성(聖)과 속(俗)의 세계를 가르는 강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풍경은 장관이다.


특정한 장소를 사랑하고 애착하는 것을 가리켜 ‘토포필리아(topophilia)’라 부른다. 한국어로는 장소애(場所愛)라 번역된다. 특정한 공간의 공기가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을 휘감아 들어와 모든 것을 잊고 꼼짝 못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관능적인 장소를 말한다. 처음 만나 설레고, 두 번째 올 때는 궁금해지다가 세 번째 올 때는 완전히 빠져드는 곳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이 그렇고 작가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파리가 그렇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던가.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에 파리에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면, 당신이 평생 어디를 가든지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그대 곁에 머무를 것이다.”


헤밍웨이처럼 나 역시 두 곳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장소애가 있다. 30대 중반에 만났던 베를린이 그 한 곳이라면 중년에 만난 로마가 또 다른 한 곳이다. 두 곳 모두 내 꿈의 폐활량을 키워준 공간이었다. 나는 특파원과 연수생으로 신분을 바꿔가며 이미 여러 차례 방문하였기에 로마에 끌린 것은 단지 콜로세움이나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같은 위대한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서민 지구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곳은 ‘테베레 강 건너’라는 뜻 그대로 유적지가 몰려있는 강 건너와 달리 로마의 토박이들의 보통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여행 세계 챔피언 독일인들에 전해져 오는 여행 3원칙을 나도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오래 머물며, 깊이 보라!”


마치 현지인처럼 아파트를 구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도시의 골목골목을 걷고 싶었다. 1786년 11월 1일, 위대한 여행자 괴테는 로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어쩔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 세계의 중심지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이 든 것 같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괴테는 흔히 ‘중년의 위기’(middle-age crisis)라 말하는 ‘번 아웃(Burn Out)’ 증상을 앓고 있었다. 휴대전화기의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는 것처럼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버린 현상을 말한다. 이런 때는 무조건 떠나야 한다. 혼자 있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괴테는 새벽 3시 아무도 모르게 길을 떠나 로마를 향했다. 다시 20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뒤, 나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한 권을 품 안에 소중히 안고 로마로 달려온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 트라스테베레

▎트라스테베레 거리.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 동네다. 좁은 골목과 카페와 바가 많다.


▣ 에스프레소에 배어 있는 로마의 영혼


괴테는 1년 8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 기간의 대부분을 영원한 도시 로마에서 체류했다. 로마에서 괴테는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진정한 그랑투르(grand tour), 위대한 여행이었다. 나도 괴테처럼 로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없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감 속에 이 도시를 다시 찾은 것이다.

로마의 거리를 걸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로마라 하더라도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와 관광객 인파에 지치다 보면 거대한 로마문명을 상징하는 포로 로마노의 유적조차도 그저 ‘부서진 돌덩어리’로 느껴질 때가 있다. 열기를 피할 곳은 로마의 상징인, 흡사 파라솔처럼 펼쳐져 있는 우산 소나무 군락 밑뿐이다.

나는 트라스테베레 뒷골목의 이름 모를 바를 찾았다. 일반 관광객이라면 트레비 분수 주변에서 시원함을 느끼겠지만 방랑자에게는 이곳이 제격이었다. 한국에서 ‘바(Bar)’라는 단어는 술집을 연상하지만, 로마에서 그것은 커피를 파는 곳을 의미한다.

‘부온 조르노!’ 인사와 함께 ‘카페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였지만, 그런 커피는 팔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수없이 그냥 커피 한 잔 달라고 했더니 내 탁자 앞에 나온 것은 에스프레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를 의미하는 이탈리아 단어 ‘카페’라고 하면 로마에서는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의미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서는 황금빛 거품 사이로 진한 향기가 피어 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웃 자리에 있는 로마 현지인의 모습을 흉내 내어 목젖으로 한 잔을 통째 넘겼다. 너무도 아름다웠던 외양과 달리 입이 탈 것처럼 강렬한 쓴 기운이 몰려나왔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그때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쳇 베이커의 재즈 트럼펫과 다크 초콜릿 같은 쓸쓸한 목소리가 섞인 음반 에 담긴 연주곡들이었다. 그랬었다. 나는 음악의 제목처럼 길을 잃고 있었다. 나는 오래 다니던 직장을 나온 뒤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한 권을 품에 안고 이 도시로 무작정 달려온 외로운 이방인이었다. 에스프레소의 쓴 맛은 어쩌면 나의 쓰디쓴 좌절감과 절망감을 말하는지도 몰랐다.

목젖을 넘긴 에스프레소 한 잔의 느낌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쓴맛이 남아있지만 쳇 베이커의 재즈 음악과 어울려 어딘가 외롭고 어딘가 매혹적인 묘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렇다. 바로 고독한 자유인의 맛이었다. 때로는 온몸이 폭풍에 노출되어 격렬한 비바람이 얼굴을 때리더라도 입술에 스며든 빗물이 달콤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맛이리라. 로마의 이름 모를 바에서 나는 쓰면서도 달콤한 자유의 그 오묘한 맛을 만난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하여도 나는 ‘카페 아메리카노’로 상징되는 ‘롱 커피’(long coffee)에 길들여져 있었다. 나는 유럽에서 얼마간 살긴 했지만, 필터를 통한 드립 커피와 커피 원액에 뜨거운 물을 듬뿍 넣은 미국식 커피에 익숙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에스프레소의 완벽한 포로가 되어버렸다.

옛 로마가 아닌 현대의 로마사람들을 알려면 에스프레소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스프레소와 바가 없는 로마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로마 시민, 아니 더 나아가 이탈리아의 국민음료이기 때문이다. 요즘 로마에서는 하나의 커피 브랜드와 커피숍 때문에 시끄럽다. 바로 미국의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오픈 소식 때문이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콜로세움의 고양이. 콜로세움은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서기 7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완성한 타원형의 대투기장이다.


▣ 모든 것이 다 있다, 스타벅스 빼고는!


전 세계의 커피 문화를 휩쓸고 있는 스타벅스지만 유독 로마와 이탈리아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스타벅스가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지금껏 단 한 곳의 스타벅스 매장이 로마는커녕 이탈리아 전역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로마와 밀라노에서 각각 한 곳씩 스타벅스 매장이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언론과 인터넷 여론이 시끄럽게 달아올랐다. 이탈리아의 유력 신문인 <라 스탐파>는 이런 시니컬한 기사제목을 게재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에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없는 게 있었다. 미국식 커피였다.”


사실 커피문화에 관한 한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은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어떤 면에서는 축구에 대한 극성스러운 열정 그 이상이다. 이탈리아에서 친구를 빨리 사귀고 싶으면 바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사이에 두고 옆 사람과 축구와 이성 친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카페와 바는 이처럼 오랫동안 로마사람들의 삶의 구심점이자 사교와 소통의 장소, 정신적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카페 그레코’(Cafe Greco)가 1760년 로마에서 처음 문을 연 이래, 커피와 카페는 로마인에게 사회생활과 소통의 구심점이자 정신적 오아시스였다. 스페인 계단의 건너편, 명품거리로 유명한 콘도티 거리 86번지에 위치한 이 커피 전문점은 오랫동안 작가나 예술가, 기자들이 즐겨 찾던 명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주인공으로 나온 앤 공주가 그레고리 펙이 역할을 맡은 미국인 기자 조를 따라서 처음 데이트 한 장소도 바로 이 카페였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 키츠, 프랑스의 스탕달,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 그리고 멘델스존, 바그너, 리스트, 비제 같은 음악가와 심지어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도 이 카페의 고객이었다. 나의 영원한 멘토 괴테 역시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었다. 그에게 이곳은 인생의 콤마, 쉼표였으며 커피는 샘물 역할을 해왔다.


이탈리아 로마 야외 카페

▎로마의 야외 카페. 로마 사람들을 알려면 카페와 바(bar)에 가봐야 한다. 이곳에서 마시고 대화하며 인생을 즐기는 곳이다.


순간적인 빠른 속도를 이용해 원두의 엑기스를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방식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것이 100년쯤 전의 일이라고 한다. 속도를 뜻하는 ‘expres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듯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뽑는데 대략 4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알프스 이북의 유럽 사람들과 달리 로마 사람들은 아침을 간단히 하거나 아니면 출근할 때 들러 가볍게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대신한다. 

저녁식사 또한 보통 8시 넘어야 시작되기 때문에 그 중간의 공복감과 허기를 바와 카페에서 달랜다. 이곳에는 아페르티보(apertivo)라 부르는 간식거리가 있기에 로마 시민들은 아침에 한 잔, 아침과 점심 사이에 한 잔, 그리고 점심과 저녁 사이에 한 잔, 이렇게 보통 하루에 두세 번은 바에 들러 에스프레소로 목을 축인다. 다양한 맛과 스타일의 아페르티보를 맛보는 것 역시 로마에서 즐기는 비밀스러운 호사 가운데 하나다. 

로마에서 에스프레소에는 여러 가지 변형이 물론 존재한다. 코르토(corto), 룽고(lungo), 리스트레토(ristretto), 코레토(corretto)라는 특이한 이름도 있지만, 로마사람들은 그냥 한마디로 에스프레소, 이렇게 부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마 사람들은 공복감이 있는 오전에는 카푸치노를 마셔도 점심 식사 이후 배가 부를 때는 이를 피한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로마 에스프레소

▎로마인들의 하루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냥 행복하면 된다, 미래는 불확실하니까”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가 아니고 로마인들이 집이나 직장 근처의 평범한 곳이라면, 에스프레소 한 잔에 보통 1유로 50 내외, 그러니까 2000원이 채 안되는 가격이니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훨씬 덜하다.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곳 역시 단골 바와 카페다. 화려함은 없어도 소박한 즐거움과 일상의 행복감을 즐기는 장소인 셈이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고대 로마의 언어로 ‘살다’는 말은 원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다’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죽다’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로마인의 의식세계 속에 사람관계의 바깥에 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언어에 인생의 핵심가치가 그대로 박혀 있다. 현대의 로마 사람들은 그들의 살아있음을 단골 바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일찍이 메디치 가문을 이끌었던 로렌초 디 메디치도 행복을 어렵게 말하지 않았다.

“당신이 뭔가 소망한다면, 그냥 행복하면 된다. 미래는 불확실하니까.”

행복은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작은 것에 있다는 얘기다. 내가 로마의 허름한 커피 바에서 배운 작은 행복의 원리다. 에스프레소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추출되지만, 그러나 이곳에서 모든 것은 천천히 흘러간다. 서두른다고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직장생활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의 영혼은 어떤 독(毒)에 중독되어 있었다.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처럼 세상에는 많은 중독이 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사실 성취 중독이다. 나도 모르게 그 중독에 걸려,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모른 채 무조건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달리기 경기장에서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로마의 이름 모를 허름한 바에서 마신 한 잔의 에스프레소는 신비한 묘약이었다. 쓰디 쓴 커피의 농축액이 마음속의 뭔지 모를 독을 서서히 빼내고 있었다. 마음의 치유라고 할까. 아니면 해독제라고 할까. 그날 나는 수첩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less is future!”

그렇다. 앞으로는 가급적 심플하고 단출하게 살 일이다. 적은 양의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미래의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이탈리아의 국민음료인지는 통계를 잘 나타난다. 집계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이탈리아에는 대략 17만여 곳의 커피바가 있고, 35만여 명이 이곳에서 일한다. 식음료업계에 종사자 수를 합하면 대략 100만 명,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그리고 커피 바리스타 한 명당 평균 11만 유로, 한국 돈으로 1억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년에 이탈리아인들이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모두 7000만 잔, 1인당 평균 600잔을 마신다고 한다. 그러니 이탈리아에서 커피 마시기는 곧 숨쉬는 것처럼 일상의 필수적인 활동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커피는 로마인들의 삶의 기쁨이자 자존심 그 자체이다. 로마의 역사학자 피에트로 비에질리토 같은 사람은 그들의 커피 문화의 효능을 가리켜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을 정도다.

“로마에서 카페와 커피는 단순한 전통 이상을 의미한다. 아니 하나의 ‘리추얼(ritual)’이라고 할까.”

리추얼이란 의식(儀式)을 말한다. 로마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랑스러운 커피문화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현대판 야만족인 미국의 스타벅스에 대한 대대적인 배척운동에 나선 것이다. 아니 차라리 전쟁선포라고 하는 편이 적절한 것이다.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를 세운 것은 그가 처음 이탈리아 여행을 한 직후였다. 그는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와 바 문화를 접하고 돌아와 ‘일 조르날레’ (Il Giornale)’라는 이름의 커피숍을 열었다가 몇 년 뒤 스타벅스라는 오늘날의 이름으로 개명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 조르날레’는 이탈리아 말로 신문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그의 눈에 비친 이탈리아의 카페문화는 커피와 신문의 융합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훗날 스타벅스가 ‘반스앤노블’(Barns & Noble)이라는 서점체인과 결합해 마케팅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에서 바라본 로마 시내. 로마는 아침에 일어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도시다.


▣ 세계에서 가장 관능적인 로마인?

로마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문화(異文化) 수용 문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소한 지금의 로마 사람들은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현재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민족적이고 자기 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운영하는 세계 모든 곳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녹색 병에 담긴 ‘산 펠레그리노’라는 자연 탄산수다. 그들의 자긍심을 잘 나타내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바로 ‘리탈리아노(L’Italiano)’,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뜻으로 토토 쿠투뇨가 1983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불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칸초네다. 경쾌한 리듬에 담긴 가사는 대충 이렇다.


“내가 노래하게 해줘/ 손에 기타를 들고서/ 나는 이탈리아 사람/ 부온 조르노 이탈리아/ 스파게티 알덴테/ (…)/ 내가 노래하게 해줘/ 부드럽게 부드럽게/ 왜냐하면 내가 이탈리아 사람이란 게 자랑스럽거든/ 진짜 이탈리아 사람(un italiano vero)….”

여기서 말하는 스파게니 알덴테의 ‘알 덴테(al dente)’는 면을 중간 정도만 살짝 익힌 요리법을 가리킨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방식이다. 먹고 마시고 요리하는 것이 얼마큼 인생에서 중요한지 노래에서도 잘 묻어 있다.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 정신은 세 가지, 간편함과 단순함과 식재료의 자연스러움이다. 모짜렐라와 토마토, 그리고 신선한 바질이면 어느 요리든 가능하다. 여기에 올리브기름, 특히 산도 0.8% 미만의 자연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라면 금상첨화다.

로마 사람들의 자긍심은 이상한 곳에서도 발휘된다. 박물관의 벌거벗은 조각들처럼 로마인은 스스로를 최고로 관능적인 사람들이라 믿고 있다. 오래전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가 이탈리아 순회공연을 할 때 “Italians do it better”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이후 이탈리아 사람들은 더 의기양양하게 되었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걸 더 잘해”라는 뜻으로, 다분히 마돈나의 상업적인 전술이었겠지만, 로마에서는 그 말을 본인들이 세상에서 섹스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왕자병, 공주병의 지존이다. 1940년대까지만 하여도 로마 사람들의 평균 첫 섹스경험 연령은 21∼22세였다. 여자 대부분은 첫 섹스를 곧 결혼으로 간주했다. 로마는 교황청이 있는 곳이기에 이 문제에 관한 한 서구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런데 그 터부가 깨지기 시작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섹스를 첫 경험한 나이가 17세로 크게 낮아졌다.

로마를 여행하는 여자들은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면 시도 때도 없이 휘파람을 부는 남자와 심지어 쫓아와 치근덕거리는 젊은이들 말이다. 심지어 경찰이나 군인조차도 휘파람 대열에 합류하여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로마에서 그것은 여자에게 일종의 예의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축구

▎로마인들의 광적인 축구 사랑은 세계에서도 으뜸이다. 이들에게 축구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인생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 “한국은 심판을 얼마에 매수했느냐?”


이처럼 자기문화와 자기 것에 대한 자긍심이 지나쳐 때로는 ‘톨레랑스’라고 하는 이문화 존중심이 부족할 때도 없지는 않다. 오래 전 나는 축구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바로 2002한일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베를린 특파원으로 한국과 상대하는 나라에 가서 그쪽의 현장 반응을 취재해 방송했는데, 토티의 퇴장과 안정환의 역전골에 흥분한 로마의 텔레비전 방송사는 온갖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이대며 방송사의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시간을 끌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방송화면을 송출할 수 있지만, 당시는 방송사에서 위성을 통해 보내야만 하였기에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이 같은 신경질적인 반응은 베를린 지사 근처의 단골 이탈리아 식당 <리스토란테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아주 친하게 지냈던 마르코라는 이름의 종업원이 갑자기 차가운 표정과 말소리로 변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나의 말에 그는 쌀쌀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고 있었다.

“너희 나라는 심판을 얼마에 매수했느냐?”

너무도 기가 찬 발언이었지만, 꾹 참고 며칠 뒤 감정이 풀어지기만을 기다리다가 간신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마르코는 솔직히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에게 축구는 인생이야. 그런데 너희들이 우리의 인생을 망쳐버렸어. 이제 우리는 무슨 희망을 갖고 사느냔 말이야?”

축구를 대하는 근본 자세가 달랐다. 그들은 단순히 손가락질이나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로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축구와 토티’ 얘기를 하다가 그만 실수임을 깨달았다. 택시 기사는 ‘그란데(Grande) 토티!’를 외치며 숙소에 도착하는 한 시간 내내 축구 얘기로 지칠 줄 몰랐다. 로마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축구와 커피는 그토록 그들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던 것이다.

확실히 로마는 시끄러운 곳이다. 이른 새벽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스쿠터 소리로 골목이 요란하다. 수천 년의 역사와 유적지가 오늘의 삶과 함께 있다 보니 길은 비좁고 늘 교통 혼잡에 시달린다. 그런 까닭에 로마 시민은 스쿠터나 자전거 같은 두 바퀴 교통수단을 애용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을 태우고 로마 경찰의 추격을 피해 달리던 오토바이는 ‘베스파(Vespa)’라는 추억의 이탈리아 브랜드다. 가끔씩 굉음을 내면서 거리를 질주하는 붉은색의 스포츠카 페라리의 폭발적인 엔진 역시 로마다운 풍경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스쿠터나 오토바이 면허가 상대적으로 간편한 곳이 로마다. 이탈리아에서는 125cc 이하의 스쿠터를 운전하려면 정식 운전면허증 대신 A1이라는 간이 면허만 있으면 되는데, 이전에는 18세를 넘어야 하던 것이 이제는 16세로 낮아졌다. 모터가 달린 모페드라는 자전거 겸용은 14세가 되면 면허취득 자격이 주어진다. 로마에서는 스쿠터와 오토바이는 곧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과 독립을 의미하는 하나의 메타포인 것이다.

로마가 시끄럽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목청 큰 대화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밀라노와 베네치아, 토리노 같은 북쪽 사람들에 비해 남쪽으로 갈수록 대체로 목소리가 시끄럽다. 그럼에도 싫지 않은 것은 음악처럼 리드미컬한 이탈리아 언어의 매력 때문이다.


이탈리아 로마 오벨리스크

▎핀치오 언덕에서 바라본 포폴로 광장과 오벨리스크.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오벨리스크를 소유한 도시로 현재 13개나 된다.


▣ 로마에서는 심심할 틈이 없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대화 도중에 손을 많이 사용한다. 북쪽 사람에 비해 남쪽으로 갈수록 손을 사용하는 빈도는 더욱 심한데, 가장 심한 것은 나폴리 사람들이다. 심지어 30분간 두 사람이 손만으로 대화하는 법을 교육하는 비디오가 있을 정도다. 나의 오래 전 친구인 주세페는 나폴리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취득한 사람인데, 그 역시 요란한 손동작으로 함께 있으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말없이 오직 손과 몸짓으로만 교환한다. 그것을 가리켜 비언어적(Non-Verbal) 표현이라 하는데, 소통은 반드시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관능의 도시로서 로마의 진정한 매력은 해가 진 직후부터다.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로마의 주택들은 집집마다 두꺼운 블라인드로 창문을 가리게 되어 있다. 200여 년 전의 괴테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코르소 거리에서도 지금은 밤에 산책과 마차 드라이브를 한답니다. 낮에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만월의 달빛을 가득 받으며 로마를 두루 산책하는 멋에 대해서는 그것을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은 마찬가지다. 해지고 난 뒤 로마는 천국으로 변한다.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로마의 공간은 포폴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핀치오 언덕이다. 그곳에서면 로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 언덕에 서면 달빛 아래 지중해 어디선가 미풍이 불어올 것이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 세워졌던 오벨리스크가 낯선 포폴로 광장 한가운데 처연히 서 있다. ‘포폴로’가 인민과 민중을 의미하는 것처럼 그곳은 로마 시민들의 약속장소로 애용되는 장소다. 그리고 괴테가 살았던 코르소 거리를 지나 멀리 베네치아 광장이 보이고, 그 한복판에 타자기 형태의 현충탑 비토리아노가 서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속(俗)의 세계와 대비되는 베드로 대성당의 불빛이 비치고 있다. 이곳에 서면 누구나 겸손해진다. 위대한 문명, 위대한 사람들도 꿈결처럼 모두 사라졌다. 나도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다.

나는 핀치오 언덕을 내려와 테라스가 있는 야외 카페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한 잔을 주문한다. 말 그대로 매혹적인 갈색을 띠고 있는 이 와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포도주다. 올리브 열매와 치아바타 빵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위세를 떨쳤던 로마황제가 부럽지 않다.

와인은 기다림의 산물이다. 오래도록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어야 달콤한 맛이 잉태된다. 서늘한 새벽의 기온에 노출되어야 풍부한 향기가 축적된다. 마음이 급하다고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때가 올 때까지 진득하게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신의 물방울’로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로마가 재미없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는 필시 인생이 재미없는 사람이리라. 정말이지 로마에서는 심심할 틈이 없다. 로마를 가리켜 ‘커다란 학교’라 말했던 괴테의 말처럼 진정한 인문 여행자라면 그곳은 도시 전체가 위대한 학습장이고 위대한 스토리텔링으로 넘쳐나니까 말이다. 1960년대를 온통 자기의 시대로 만들었던 반전 문화의 기수이자 가수였던 밥 딜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밥 딜런의 말대로라면 로마에서 나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잠에서 깨어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 지천에 깔렸으니까. 물론 로마는 일하기 좋은 곳만은 아니다. 최고의 관광지답게 늘 붐비고 요금도 비싸다. 이곳 사람들의 시간관념은 북유럽 사람들과 달리 정확성과는 거리가 있다. 불친절하고 얼렁뚱땅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어딘가 뒤죽박죽인 기분도 느껴진다.

그렇지만 로마는 매력적이다. 진정한 재즈 음악가라면 그루브(groove)를 알아야 한다. 리듬을 타고 음악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듯 로마는 우리에게 인생의 그루브를 가르쳐주는 곳이다. 일과 휴식, 삶과 의미, 시간과 공간 사이의 묘한 일체감 말이다.

인생의 르네상스를 꿈꾼다면 로마를 권한다. 한 번쯤 남들이 정한 인생 코스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나만의 시간표를 갖기를 바란다. 인생은 어차피 나의 길을 걸어야 하니까 말이다. 로마는 내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기적처럼 나는 그곳에서 치유가 되었고 부활의 에너지를 찾았다. 나만의 그루브 인생 감각도 익혔다. 로마는 진정 위대하였다.

손관승 iMBC 전 대표이사는 퇴직 이후 새로운 인생을 찾아 필생의 버킷 리스트였던 이태리 여행을 떠났다. 그가 들여다 본 이탈리아 로마는 흥미진진하다. 현재 이탈리아 로마를 계획 중인 이라면 손관승의 기행문을 천천히 들여다본 뒤 떠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