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의 공통점

일본 아베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듯 닮은 점이 많은 정권이다. 두 사람 모두 전 정권의 반감을 통해 탄생했고, 실패를 경험하고 인지한 정치가라는 닮은 점이 있다. 아베 총리의 성공과 실패를 보면서 비슷한 환경과 배경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을 만한 점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2012년 12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을 압승으로 이끈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운데).

 

1981일. 5월 28일을 기준으로 할 때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자민당 총재 재임 기간이다. 2006년 아베 제 1차 내각 당시의 366일과 2012년 12월 26일 시작된 제 2차 내각 이후의 재임기간을 합친 수치다. 1981이란 숫자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전후(戰後) 장수 총리 3위에 오른 기록이기 때문이다. 1위는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로 2798일. 2위는 GHQ(연합군 최고사령부)통치 당시 맥아더 장군의 카운터 파트너에서 이후 총리에 오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로 2616일이다. 원래 3위를 지키던 인물은 재임기간 1980일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다. 기억에도 생생하겠지만, 2002년 9월 갑자기 평양에 건너가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김정일과 만난 뒤 납치된 일본인들을 데리고 온 인물이다.


아베는 당시 관방성 부장관 자격으로 고이즈미를 수행했다. 전 세계에서 김정일을 직접 만난, 몇 안 되는 정치가 중 한 명이 아베다. 아베는 1981일을 넘어 이미 2000일대 집권에 들어선 정치가다. 포퓰리즘 정치를 본격 도입하면서 극장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이즈미의 장기집권 기간을 넘어섰다. 문자 그대로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에 해당된다. 현재의 아베의 정치력을 본다면 3000일에 육박하는 전후 최장의 재임기간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재임기간과 리더십의 정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베 입장에서 본다면, 2798일의 사토 에이사쿠 재임기간을 능가하는 총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일 것이다. 전시가 아닌 평시의 내각제 아래서 2000일 이상의 재임기간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업적이다. 정책의 일관성, 안정성이란 점에서 역사에 남을 리더십이 가능하다.


▒ 2017년 일본 대세, 아베 1강

 

일본의 신문·방송은 아베가 이룩한 장기집권의 의미와 전망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아베 1강(安倍一强)’이다. 아베가 집권 2년째이던 2013년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단어로, 언제부턴가 상식용어로 정착된다. 아베에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라를 극우광풍으로 몰아가는 어두운 이미지로, 찬성하는 사람이 본다면 강하고도 안정되고 평화로운 의미로 통하는 단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지여부를 떠나 아베가 강하다는 점이다. 자신을 보호할 정도인, 약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다. 남에게 영향을 주면서 뜻대로 움직일 정도의 정치력을 갖고 있다. 아무리 많은 뉴스메이커와 이슈가 일본 정치무대에 등장한다 해도 핵심 키워드는 아베 1강이다. 2017년 일본 정치의 핵인 동시에 내일에 대한 나침반이 바로 아베 1강이다.


아베 1강은 그 같은 한국에서의 일반적 분석의 정반대편에 선 2017년 일본의 현실이다. 아베 1강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본 국민의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월등히 높다. 높을 때는 60%를 넘어서고, 낮아도 50%대에 머무는 것이 아베 내각 지지율이다. 재임 2000일을 넘긴 총리치고 50%대의 지지율을 가진 내각은 극히 드물다. 그 흔한 레임덕도 없고, 자민당 내 파벌들 간의 후계자 논쟁도 찾아보기 힘든 명실상부한 1강 체제다.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지 두 달째로 접어든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상당하다. 정권 초기 프리미엄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스스로가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듯하다. 행인과의 셀피, 와이셔츠 차림 청와대 회의, 종이컵 커피로 시작하는 미팅…. 21세기 선진국 정치문화로 본다면 너무도 상식적인 모습이지만, 소통이 아닌 ‘쇼통(쇼로 통하는)’이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대로를 지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대한민국호(號) 선장 문재인을 떠올릴 때 곧바로 연상되는 인물이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문재인과 아베는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치가로서 상황이나 환경, 나아가 정권을 잡게 된 정치적 배경 등을 고려할 때 너무도 비슷하다.

크게 볼 때 세 가지다. 첫째 정권 탄생의 배경이다. 두 사람 모두 전(前)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바탕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박근혜다. 나라 전체를 무속(巫俗) 공황상태로 만들어간 불소통 지도자다. 박근혜에 대한 불만이 넘칠수록 문재인에 가깝다. 박근혜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적폐 대상’으로 넘겨지면서 반대편에 선 문재인이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다.

 

반사이익으로 탄생한 정권

 

문희상 일본 특사(왼쪽)가 5월 18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자체의 개인적 능력과 비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선거의 승패는 얼마나 박근혜와 떨어져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후보자가 가진 플러스 요인보다 박근혜에 대한 마이너스 효과가 한층 더 컸다. 문재인 당선을 수동적으로 보는 필자의 견해에 반발할지 모르겠다. 집권이 반드시 정책, 비전과 같은 능동적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수동적 차원에서, 전임자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탄생된 정권이 대부분이다. 그 같은 역사는 장수 총리 아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베가 96대 총리에 오르기 직전의 집권당은 민주당이다. 2009년 9월 16일부터 2012년 12월 26일까지 1200일 집권기간 중 세 명의 총리가 탄생한다. 하토아먀 유키오(鳩山由紀夫), 간 나오토(菅直人),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다. 하토야마 정부가 출범한 2009년 9월, 자민당은 이미 역사 속의 정당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자민당 파벌을 스스로 무너뜨린, 극장정치의 대명사 고이즈미 전 총리 덕분이다. 고이즈미가 물러난 뒤 세 명의 자민당 총리가 등장하지만, 현란한 포퓰리즘의 근처에도 못 간다. 국민들의 갈증을 채워줄, 고이즈미 이상의 정치가는 더 이상 없다. 전부 1년 정도 임기만을 채우고 물러난다. 아베도 그중 한 명이다. 파벌간의 세력균형으로 유지되던 자민당 정치가 수명을 다하면서 마침내 ‘구습 청산’을 내세운 민주당이 등장한 것이다. 경제·정치·외교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열기와 청년들의 지지가 들끓는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원자력발전소가 곧 폭발할 것이란 소문이 꼬리를 잇는다. 만약 터질 경우, 열도의 3분의 1이 방사능에 오염되고, 1억2000만 인구의 5분의 1이 영원히 피난을 해야 한다. 눈에 불이 튀고 목이 타던 시기지만, 민주당은 무력했다. 자민당이 만들어낸 과거 악행 탓이라 비난하면서 제대로 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질 못했다. 국민들은 3·11 대지진보다, 민주당이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행정능력을 보면서 절망했다.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의 자민당 압승과 아베 등장은 바로 그 같은 상황의 결과물이다. 자민당이 대단해서, 아베가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다. 자민당 이전의 민주당의 무능과 실정이 아베 탄생의 가장 큰 원인이다. 문재인과 아베는 반사이익을 통해 등장한 구원투수라는 의미가 강하다.

 

모든 것을 가진 아베의 몰락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그의 후계자로 부상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왼쪽).

 

둘째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실패를 경험하고 인지한 정치가란 점이다. 문재인은 대선 1주일을 남겨둔 5월 초 불교계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실패를 교훈으로 한 정치에 대해 역설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공과 과를 돌아봤습니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삶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저 문재인, 민주정부 10년의 공은 공대로 계승하겠습니다. 부족했고 실패한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겠습니다.”

아베는 어떨까? 아베는 집권에 임하는 자신의 정신자세를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라 역설한다. 좀처럼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고이즈미도 아베 1강의 배경을 “실패에서 배우는 (아베의) 자세” 라고 단언한다.

아베의 실패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된다. 먼저 아베 자신에 관한 부분이다. 아베 1차 내각 당시인, 2006년 366일 기간 중의 실패에 관한 부분이다. 아베 1차 내각은 아베가 가진 ‘금수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잘 알려진 대로 아베는 외상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를 아버지로, 총리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외할아버지로 한 정치계의 스타다. 일본 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지명도·정책 같은 것이 아니다. 이른바 3반(三バン)으로 불리는 지반(地盤), 간반(看板), 가방(カバン)이 승패의 핵심이다. 지반이란 지역구에서 통하는 지명도다. 간반은 전국에 통할 학력이다. 가방은 선거를 치를 실탄, 즉 돈의 규모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정치가는 그렇게 흔치 않다.

 

아베의 숙원은 헌법 개정이다. 평화헌법이 아니라, 적과의 싸움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헌법이다. 아베 1강 구도를 감안할 경우 북한 미사일이 쏘는 틈을 이용해 곧바로 헌법개정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베는 뜸을 들이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당장 헌법 개정을 단행할 수는 있겠지만, 각론에 들어가서 정치권과 국민들의 반발이 있을 경우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서두르지 않고, 모든 불만을 잠재우면서 나아가는 통치스타일은 실패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다.

문재인과 아베가 갖는 공통점 중 세 번째는, 왕(王)의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가까이서 직접 경험한 인물이란 점에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노무현의 레임덕이 심화되던 집권 말기 1년간이다. 서로 친구 사이지만, 대통령 노무현을 옆에서 보필하면서 얻은 지식과 지혜가 남다를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가 그러하듯, 옆에서 보면 너무도 잘 보인다. 한국과 같은 정치문화 속에서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뭔가를 충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비서실장 당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느낄 만한 사안이 결코 없지 않았을 듯하다. 노무현은 언화(言禍)가 많았던 정치가다. 주변에서 충고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다. 직언은 못했다 하더라도, 긴 머리카락 속에 감춰진 큰 귀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도 많았을 것이다.



탁월한 리더십보다 원만한 리더십

 

아베도 마찬가지다. 아베는 일찍부터 고이즈미의 친위부대로 발탁된다. 관방성 부장관을 거쳐 차기 후계자로 나서는 동안 고이즈미를 가장 가까이서 경험한다. 북한을 함께 방문하면서 고이즈미가 시작한 납치 문제를 스스로의 간판정책으로 바꾼다. 총리에 오르기 전까지의 아베의 위치는 바로 고이즈미의 장점은 물론, 단점과 실패도 잘 이해할 자리라 볼 수 있다.

 

아베와 비교할 때, 문재인이 참고로 삼을 만한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 비슷한 환경과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실패의 성공학’이다. 어제의 무용담이나 특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패로부터의 교훈 찾아내기가 밝은 내일을 보장한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더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개인사가 그러하듯, 얼마나 실패했고 거기에서 얼마나 교훈을 얻었는지가 승패를 가를 듯하다. 첫사랑으로 되돌아간다고 할 때 아마 거의 대부분은 좀 더 멋진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탁월한 리더십보다 다소 약하더라도 모두가 공감하는 원만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힘이 있다고 밀어붙이기보다, 힘이 떨어질 때 나타날 마이너스 결과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삼스럽게 진정성이나 동기의 순수성 하나로 밀고 나가던 시대는 끝났다. 국민들이 외치는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에 대한 대차대조표만이 정답이다. 곧 사라질 듯 여겨졌던 아베가 왜 1강으로 남아 일본 정치의 신화로 정착되고 있는지? 5년간 대한민국을 책임질 문재인이 참고해도 좋을 만한, 실패에 기초한 성공담일 듯하다.